쇠고기 문제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상당수의 쌍무 무역협정이 해당국 국내의 반대 여론에 부딪혀 난관에 빠져 있다. 양자간 또는 역내 무역협정은 다자간 무역협정 보다 쉽게 타결될 듯 보이지만, 최근 많은 나라들이 체결하는 양자간 협정이 자국 내 정치세력 또는 업계 등 이익단체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교착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18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과 콜롬비아간 FTA 체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 의회는 이 FTA가 콜롬비아 마약조직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이유로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인도간 무역협정은 양측이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느라 협상 자체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유럽 은행 및 유통업체들은 인도에 진출하고 싶어하지만, 인도 기업들은 이들의 진출을 막기위해 대정부 로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비해 인도는 자국 내 정보기술(IT) 사업 및 관련 인력의 유럽시장 진출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EU측은 각국의 이민정책을 조율해야 하는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다. EU의 한 관계자는 “무역 파트너로서 인도의 요구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곤란할 뿐”이라고 밝혔다. EU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역내 무역협정 역시 좌초되기 직전이다.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싱가포르와 개발도상국인 라오스 같은 국가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여 채 협상을 진행하다 보니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부분까지 합의를 봐야 한다. 그러나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지적이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특히 경제력의 수준 차이가 나는 국가들간의 무역협정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제네바 국제대학원의 리처드 볼드윈 교수(국제경제학)는 “양자간 및 역내 무역협정이 다자간 협정보다 체결되기 쉽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며, “아시아 최고의 경제력을 갖춘 한국, 중국, 일본 3국이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FT는 양자간 협정의 퇴조가 자유무역기조 전반의 쇠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양자간협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다자간협정인 도하라운드도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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