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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선 리더십/박승 중앙대 교수(송현칼럼)
입력1997-03-17 00:00:00
수정
1997.03.17 00:00:00
박승 기자
내가 내 집을 관리하는 것과 세든 사람이 셋집을 관리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세든 사람은 대들보가 썩든 주춧돌이 빠지든 관심사가 아니다. 거기 사는 동안 피해만 없으면 그만이다. 집을 손보아야 할 경우에도 10년 또는 1백년 앞을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지금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 집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셋방살이 하는 사람들이다. 한보사건은 그 생생한 하나의 실례이다.
은행들이 외압을 받고 한보라는 부실기업에 5조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대출하여 떼이게 되었다는 것인데 외압을 넣은 권력층은 그 돈이 자기 돈이라면 그렇게 대출하도록 외압을 넣었을 것인가. 은행장들은 그 돈이 자기 돈이라면 압력을 받는다고 그렇게 대출했겠는가. 감독기관과 정부는 그렇게 되도록 모른척 했겠는가. 그리고 검찰은 그 떼인 돈이 자기 돈이라면 그런 식으로 수사를 했겠는가.
그런데 이것이 한보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도의 차는 있을지언정 우리사회 전체가 모두 주인의식을 잃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은행들은 모두 부실화되어 있다. 엄청난 부실채권과 적자를 안고 있으며 외국에서는 돈을 꾸어 주는 것도 기피할 만큼 신용이 추락되어 있다.
그런데 은행을 이끌어 가는 임직원들은 일본이나 미국의 은행원과 맞먹는 월급을 받고 있다. 이들 선진국의 은행원 한 사람은 우리나라 세 사람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 부실화하는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사람을 줄이지도 못하게 되어 있다. 이제 금융도 개방하여 온 세계 은행들이 밀려 온다는데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이것은 은행만의 일이 아니다. 증권회사도 그렇고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신문사도 그렇고 방송사도 그렇다. 다만 이들은 그 부담을 비싼 광고료로 사회에 전가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우리사회 조직은 멍이 들고 있는데 그 구성원들은 자기 몫을 키우고 지키기에만 허둥대고 있으니 내 집 살림이라면 이런 식으로 하겠는가.
기업들은 사회야 어떻든 나만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한보는 그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부실한 재무구조를 가지고 빚으로 과욕투자를 하고는 그 모든 것을 사회에 떠넘기고 있다. 다행히 성공하면 그 재산과 경영은 세습하겠다는 것이고 잘못되어 도산하면 그것은 사회가 맡으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정권에만 눈이 어두워있다. 정권을 잡고 그것을 유지하는 일, 그래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를 모으는 일, 그리고 정권을 잡게 되면 5년이라는 임기 동안만이 중요할 뿐이다. 이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지, 그래서 백년대계를 어떻게 세워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국제수지 적자가 매년 눈덩이처럼 쌓여서 나라 기틀이 흔들리고 있어도 팔장을 끼고 방관해 왔다. 고비용·저능률때문에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있다고 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공직자들은 개인보신과 무사안일에 몸을 사리고 있고 일이 터져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모두다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사회는 누가 지킬 것인가. 그리고 민초들은 누굴 믿고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이것은 바로 신뢰위기이며 리더십의 위기이다. 나라의 법을 집행하는 검찰에 대해서 국민들이 그토록 불신한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불신과 리더십의 위기가 벼랑에 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당면한 경제위기도 바로 이러한 문제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경제는 성숙기에 접어 들어 성장이 감속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경제개방은 농업·중소기업·금융업·도소매업·건설업·서비스업 등 이른바 국내부문산업(또는 내수산업)의 붕괴위기를 몰고 온 것이다. 이러한 위기요인들을 극복하려면 정부의 확고한 위기관리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민주화과정에서 이러한 리더십은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자동차는 핸들·액셀러레이터·브레이크 등 세가지 기능으로 굴러간다. 지금 우리사회는 이 세가지 기능이 모두 고장난 상태에 있다. 말하자면 교통신호가 고장난 도시가 된 셈이다. 방향감각이 없어지고 옳고 그른 기준이 흐려지고 믿고 기댈 곳이 없어지고…. 이러한 무규범·무동의 아노미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모두다 한배에 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될 때 생기는 현상이다. 교통신호가 고장날 때에는 서로들 자기만 먼저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은 다 같이 막혀버리게 되지 않는가. 지금 우리가 그러한 형국에 있는 것이다.
지금 모든 문제는 국민적 신뢰와 민주적 리더십의 회복에서부터 새출발해야 한다. 우리 모두 주인의식을 되찾아야 한다. 이것을 정부가 앞장서서 시동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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