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공세
컴퓨터는 질문을 많이 던질수록 대화를 주도할 수 있다. 또한 그럴수록 설득력 높은 최적의 답변을 찾을 수도 있다. 반면 대답을 많이 할 경우 인간의 감정이나 세상에 대한 무지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기존의 채팅프로그램들이 엄청난 질문공세를 펼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채팅프로그램의 효시는 1960년대 MIT 연구팀이 개발한 ‘엘리자(Eliza)’로 연구팀은 어떤 치료사가 자주하던 질문들을 차용해 질문목록을 만들었다.
인공지능
사람과 대화하려면 컴퓨터는 자유롭게 묻고 답할 수 있는 지능을 갖춰야 한다. 현재 세계 최고 지능의 컴퓨터는 2011년 한 퀴즈쇼에서 인간을 이긴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이다. 초당 500기가바이트의 연산속도를 지닌 왓슨은 일상 언어를 알아듣고, 방대한 내·외부 데이터베이스에서 필요한 지식을 가져온다. 덕분에 건강관리, 금융, 소매업 관련 업무도 처리해낸다. 하지만 인간과 로맨스를 꽃피우려면 더 높은 지능이 요구된다.
치명적 매력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마약 복용, 성행위처럼 민감하고 개인적인 주제의 경우 사람보다 컴퓨터에게 더 쉽게 말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컴퓨터로 사람들을 인터뷰한 뒤 컴퓨터의 성능을 평가하도록 했다. 그러자 종이에 적을 때보다 실험에 쓰인 컴퓨터에 직접 입력할 때 더 후한 점수를 줬다. 마치 컴퓨터의 감정을 고려한 듯 말이다. 이처럼 고백과 친절을 이끌어낼 컴퓨터가 개발되면 사랑에 빠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엘리자(Eliza) 지금도 엘리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여전히 많은 웹사이트에 호스팅돼 있기 때문이다.
[감독의 시각] 스파이크 존즈 감독
영화 ‘허’의 아이디어는 각본과 감독을 맡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10여 년 전 채팅프로그램과 대화하며 놀 때 떠올렸다고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채팅프로그램이 대화 도중 ‘당신은 별로 흥미로운 사람이 아니네요.’라고 말했던 게 계기가 됐다. 당시 존즈 감독은 기분이 나빴지만 애매모호한 말을 하는 인간과 달리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채팅프로그램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분명 건방졌지만 나름의 세계관과 태도를 지니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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