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낭자한 모리엘로 교수의 범죄현장 미니어처는 장난감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형의 집과는 거리가 멀다. 처음에 볼 때는 무슨 기괴한 장난감처럼 보인다. 폭력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아웃사이더 예술이나 아담스 패밀리에 나오는 소품 같기도 하다. 작은 벽에는 피가 튀어 있고, 벽걸이용 작은 전화기의 수화기가 후크에서 벗겨져 바닥 쪽으로 달랑 매달려 있다.
닫힌 차고에서는 빨간 색 차가 공회전을 하고 있다. 차의 머플러에서는 유리섬유 배기가스가 한 다발 피어 오르고 있다. 그리고 물론 시체들이 여기 저기 놓여 있다. 차고 바닥에 하나, 부엌 리놀륨 바닥에 반듯이 누운 하나, 피로 얼룩진 카펫 위에 넘어져 있는 하나가 있다. 또 한 구는 성경을 쥔 채 침대에 웅크린 채 널브러져 있다. 옆에는 총이 하나 놓여있고 양 미간 사이에 총알을 맞은 흔적이 있다.
모리엘로 교수는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그가 꾸민 6개의 범죄현장 입체모형은 사망원인-사고나 자살, 살인-을 예비 판정할만한 단서들을 가지고 있다. 각 현장마다 학생들의 질문에 답할 그와 관련된 세부사항이 마련되어 있다.
요즘과 같이 컴퓨터를 통해 3차원 혈흔 유형 분석과 사건 현장 재구성(reconstruction)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시대에 모리엘로 교수의 인형의 집과 같은 교재는 이제 한물 간 시대의 유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교수는 직접 체험하는 것이 최고의 공부라고 주장한다. 침대 위에 널부러진 시신들은 모리엘로 교수가 직접 고른 고무 제품으로 좀더 실감나도록 그 위에 피부색을 칠한 것이다. 또 다른 쓰러진 시신 인형의 머리에는 움푹 함몰된 자국이 보인다. 이것은 가까이 있는 등(燈) 모양과 일치한다. 둔기로 맞아 쓰러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난 학생들에게 범죄 현장을 샅샅이 뒤집어 살펴보도록 합니다. 침대 보를 당겨 누워있는 시체를 뒤집어 보고 실험실에 비치된 장비들을 모두 가져 다 사용하라고 가르칩니다. 전부 미니어처들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모리엘로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것은 실제 범죄현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실제 범죄현장에 대한 접근은 불가능하지요. 경찰이 봉쇄하니까요.” (모리엘로 교수는 학교 내의 공간 하나를 임시로 빌려 실물 크기의 범죄 현장으로 꾸며 놓기도 했었다).
모리엘로 교수가 만든 인형의 집보다 앞선 모델이 있다. 교수의 미니어처 모델들은 1940년대와 50년대에 괴짜 백만장자가 만들었던 19개의 사망현장 세트를 본 뜬 것이다. 미국 최초의 법의학병리학 과정인 하버드대 법의학과를 설립하기도 했던 인터내셔널 하베스터(International Harvester) 사의 상속녀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Frances Glessner Lee)는 자신이 즐기는 일, 즉 살인사건 수사 연례 세미나를 위해 미니어처를 만들었다. 이 세미나에는 미국의 내로라 하는 수사관 40-50명이 앞을 다투어 참석했었다. 각 세미나 사이의 휴식 시간에 뉴햄프셔 주 경찰서 명예 서장이기도 한 그녀는 화이트 마운틴의 별장으로 옮겨 진짜 사망 사건 조사에 대한 세세한 재구성을 하면서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과 두뇌 게임을 벌일 준비를 했다.
프랜시스는 각 축소 모델마다 3천 달러씩이나 썼다. 당시에는 그만한 돈이면 제대로 된 집을 한 채 살 수 있을 만한 액수였다. 그리고 실제처럼 움직이는 문과 창, 등까지 달았다. 축소 모델에 사용된 잡지, 달력, 약병의 레이블들에는 또박또박 인쇄까지 되어 있었다. 총알, 산탄총 탄약통도 정교하게 만든 축소판들이었다. 프랜시스는 모델 현장에 누운 시신들의 옷도 넥타이 핀과 실을 사용하여 실제와 흡사하게 만들어 놓았다.
메릴랜드 주 수석 법의관실의 행정관 제리 드지에치초비츠는 프랜시스가 만들어 놓은 인형의 집 가운데 몇 가지는 이제 세미나 용으로 쓰지 않는다고 말하며, “한 방 가득 총을 든 채 서 있는 사람들한테 그들의 의견이 옳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라고 농담을 건넸다.
프랜시스가 모든 것을 꼼꼼하고 정교하게 준비하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모리엘로는 강도 모델의 스키 마스크에 일회용 반창고를 붙이거나 빈 탄창 대용으로 샤프 펜슬 끝의 쇠붙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의 입체 모형만으로 부족한 것들을 그는 현대판 CSI(과학수사대)의 상황으로 보충한다. 그는 범죄 현장에 학생들이 흑등(black lights)을 비추어보면 침이나 정액이 형광을 발하듯 이와 비슷하게 보이지 않는 물질을 묻혀 놓는다.
모리엘로 교수는 어느 학생이 실제 사망 현장 조사 시 문제 접근에 어려움을 겪을 것인지를 알아내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문제가 있는 학생들은 현장에서 무엇인가를 손으로 접촉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다.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모든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침대 보 안을 뒤집어 보고, 시신을 뒤집어보며, 사건의 날짜를 확인하기 위하여 바닥에 뒹구는 신문의 날짜를 살펴보는 등 말입니다.”
인형을 가지고 잘 놀지 (혹은 살피지) 않으면 범죄의 실마리를 풀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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