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의 한 대학부설 임신센터에 가면 부모의 유전자를 기본으로, 다른 유전자를 주입하여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능력을 향상시킨 태아를 낳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다. 신기술에 대해 회의적인 남편은 아기를 설계한다는 것이 어색하다고 주저했지만, 부인은 취업 경쟁이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남편은 결국 부인의 마지막 한 마디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전하다면 뭐가 문제겠어요? 부부는 임신센터를 방문하여 DNA 적합성 검사를 받은 뒤, 원하는 아기의 정신적인, 육체적인, 정서적인 특징을 결정하는, 다음과 같은 유전자 패키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부부는 비용 측면에서 약간 무리를 하더라도 패키지 간에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고를 수 있는 모든 혜택을 빠뜨리지 않고 그들의 아기에게 채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새로운 유전자 패키지로 태어난 예쁜 딸을 기쁘고 자랑스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옆의 출생증명서가 그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살아가면서 가족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배우자밖에 없다고 한다. 부모도 선택할 수 없고 자식도 선택할 수 없지만, 배우자는 본인이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자식도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설계할 수 있게 됐다. 앞서 보기로 든 박치용김신화 부부의 이야기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실화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맞춤 아기(designer baby)가 처음 태어난 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다. 2년 전 미국에서 희귀한 빈혈을 앓는 딸 몰리(6)를 살리기 위해 그 부모가 동생을 선택적으로 임신하고 출산하여 결국 딸을 살려냈다. 당시 미네소타 대학의 존 와그너 박사는 몰리와 조직이 일치하는 골수를 가진 아기를 낳도록 하기 위해, 부인의 난자 15개를 시험관에서 수정시켜 배아 10개를 얻은 다음, 유전자 검사로 악성 빈혈 유전자가 없는 배아를 골라 출산시키는데 성공했다. 몰리는 동생 아담의 탯줄혈액에서 이식받은 골수가 혈소판과 백혈구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한 달만에 퇴원하여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최초의 맞춤 아기인 아담은 인간의 생명 그 자체가 목적이지 수단이 될 수 있느냐는 생명윤리 논쟁을 일으켰지만, 그 부모에게는 둘도 없는 기쁨을 안겨줬다. 누나 몰리의 목숨을 구한 것은 물론, 유전병 때문에 출산을 기피했던 부모의 고민을 말끔히 씻어준 것이다.
같은 해 프랑스에서도 맞춤 아기가 태어났다. 치명적인 간 질환 유전병을 갖고 있는 부부가 두 아이를 잃은데 이어, 3번째 아이도 치명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어 유산시킨 뒤, 시험관 수정된 배아에서 불치병 유전자가 없는 수정란을 골라 착상하여 아들 발랑탱을 낳았다.
이 같은 맞춤 아기에 대한 생명윤리 논쟁이 채 불이 붙기도 전에 맞춤 아기는 계속 태어날 것이다. 지난 4월 영국은 유전병을 가진 신생아 출산을 막기 위해 불임치료 초기 단계에서 배아의 성 감별을 허용했다. 특정한 성에만 나타나는 유전병을 피해 임신, 출산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어 오스트레일리아도 3쌍의 부부에 대해 몰리의 부모처럼 자녀의 유전병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맞춤 아기’ 출산을 허용했다.
사실, 자녀의 유전병 치료를 목적으로 동생을 갖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애니사의 부모는 적합한 골수 기증자를 찾지 못해 동생을 임신하기로 결정했다. 새로 태어날 동생의 골수가 적합할지 알지도 못한 채, 부모는 무조건 강행하기로 했다. 임신 도중에 몇 번 검사를 받은 결과 정말 다행히도 애니사의 골수에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골수 이식 수술은 성공이어서 애니사는 백혈병에서 완쾌됐다. 그러나 애니사의 동생은 선택적으로 임신되고 출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맞춤 아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는 신기술을 이용해서 생명을 보호할 권리를 가질 수 없는가? 애니사(1988년)부터 시작하여 몰리(2000년)로 이어지는 맞춤 아기는 모두 형제 자매의 유전병 치료를 목적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도 자녀의 유전병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한해 맞춤 아기 출산을 허용했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택할 수밖에 없는 방어적인 개념의 맞춤 아기다.
앞서 가까운 미래의 사례로 든 박치용김신화 부부의 이야기는 공격적인 개념의 맞춤 아기를 보여준다.
자녀의 작은 키나 낮은 지능을 유전병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장애로 받아들이는 부모는 태아 단계에서 그것들을 결정짓는 유전자를 조작하려 들 것이다. 어느 부모가 더 강하고 더 영리하며 더 잘 생긴 후손을 원하지 않겠는가? 특히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채 임신도 하기 전에 후천적인 교육과 재산은 물론 선천적인 경쟁력까지 미리 준비하려는 부모의 욕심을 어디까지 비난할 수 있는가? 과연 우리는 신기술을 이용해서 생명을 향유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한국 대한 커뮤니케이션 연구위원 허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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