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 미 국무부가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사라 로저스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보가 “한국의 네트워크법 개정안이 표면상 명예훼손성 딥페이크를 시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기술협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이 한국의 디지털 플랫폼 규제에 잇딴 견제구를 던지면서, 향후 한미 통상 마찰의 뇌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로저스 차관보는 30일(현지 시간) 엑스(X·옛 트위터)에 “한국의 네트워크법 개정안(Network Act)은 표면적으로는 명예훼손성 딥페이크를 시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기술협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딥페이크는 당연히 우려스러운 문제지만, 규제 당국에 관점에 기반한 검열 권한을 부여하기보다는 피해자에게 민사적 구제책을 제공하는 것이 더 낫다”고 적었다. 한미 정부 간에 비공개 소통 통로가 충분히 있음에도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이례적이다.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은 고의로 허위·조작정보를 유통해 피해를 준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국내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침해하고 권력자가 언론을 상대로 전략적 봉쇄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며 논란이 인 바 있다.
미국이 문제제기를 한 것은 이 법으로 인해 결국 미국 빅테크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법안은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 처럼 대규모 정보통신망을 구축해 운영하는 이른바 거대 플랫폼 사업자를 대상으로 자율규제를 지원하고 불법·허위 정보 삭제와 투명성 보고서 제출 등의 일정한 법적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거대 플랫폼 사업자가 불법정보와 허위 정보에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하는 법체계를 도입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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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메타 등 미국 빅테크가 이 법으로 인해 규제 부담을 지게 될 수 있다고 보고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달 나온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게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실제로는 미국 기업에 부담이 가는 법안이 통과가 된 셈이다. 특히 미국은 EU의 DSA를 강하게 비판해왔으며, 전세계가 EU식 디지털규제를 도입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한국이 EU를 따라갈 조짐을 보이자 행동에 나선 것으로도 읽힌다.
최근 한미간에는 한국의 디지털 규제 움직임을 놓고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지난 18일로 예정됐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회의가 연기된 것과 관련해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이 디지털 관련 규제를 추진하는 것에 대한 미국 측 불만 탓에 내년 초로 연기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에만 차별적이라고 판단하는 디지털 규제를 한국이 추진하고 있어 FTA 공동위가 연기됐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쿠팡 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 규제안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는 등 빅테크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에 지난 16일 미 하원에서 열린 반독점소위 청문회에서는 "한국의 온라인플랫폼법 등으로 미국 경제에 10년간 최대 5250억달러(약 758조원)의 장기적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제기되며 미 공화당 의원을 중심으로 한국의 움직임을 강하게 경계했다. 쿠팡 정보유출 사태에 대해 트럼프 1기 때 안보 수장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한국이 미국 기술기업을 겨냥하며 트럼프의 노력을 훼손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공개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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