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노후 산업 단지를 청년이 머물고 싶은 문화 단지로 바꾸자는 ‘산리단길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주차할 곳이 없어 산단 골목골목이 차량들로 뒤엉킨 모습과 산단 근무 직원들이 식사 후 커피 한잔 마실 곳 없는 척박한 환경이 결국 산단을 청년들이 기피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에 청년복합문화센터 건립, 아름다운 거리 조성, 노후 공장 청년 친화 리뉴얼 등 산단을 바꾸기 위해 3년간 총 1261억 원의 국비가 투입된다. 공장 외벽에 벽화를 그리고 조명을 설치하고 음악회 등 각종 문화 행사를 하며 칙칙했던 산단을 바꾸려는 노력이 본격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산단에 근무하는 청년들의 체감은 사뭇 달랐다. 도심지에 가까운 일부 산단의 경우 지역 주민들이 산단 내에서 이뤄지는 문화 공연에 참여하는 등 작은 변화가 있지만 대부분의 산단에서는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산단 입주 기업 대표인 A 씨는 “산단 내 복합문화센터 등 인프라 구축을 많이 하고 있지만 다들 도심지로 퇴근하기 바쁜데 누가 산단에 남아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맥주 한잔을 하겠냐”고 말했다. 실제 A 씨는 부족한 청년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공장 내 1인실 원룸과 스크린 골프장, 안마의자, 당구대까지 설치를 했지만 대부분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퇴사했다는 것이다. 시설이 좋아도 저녁이 되면 어둠의 섬이 되는 산단에 청년들이 머물기에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월 20만~30만 원의 월세 지원비를 지급한 공장의 경우 퇴사자 한 명 없이 직원들의 만족도가 더욱 높아졌다. 산업 단지 내에서 운영되는 문화 콘텐츠 역시 외부에서 하는 콘텐츠와 질적으로 차이가 크다 보니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산단 입주 기업 대표들은 “이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산단 내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청년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균형 있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산단 내 기숙사보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도심지의 주거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이나, 산단이 아닌 외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연계하는 등 산단 바깥의 우수한 자원들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정책은 설계 단계부터 산단별 특성과 정책 대상인 청년들을 중심에 놓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지금부터라도 산단 정책은 산단이라는 울타리 내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정책적 고집과 힘을 빼고 정작 청년들이 어디에서 일하고 생활하며 무엇을 원하는지를 점검하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청년들의 생활권은 대부분 도심에 형성돼 있고 문화 소비 역시 산단 내부가 아닌 외부의 양질의 콘텐츠로 향하는 만큼 산단 문화 정책도 ‘산단 중심’이 아니라 ‘청년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산단 내부 중심이 아닌 산단과 인근 도심까지 보는 균형 있는 정책적 설계가 청년이 찾는 진짜 산단을 만들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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