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검찰청 형사부의 한 검사실. 책상 위 수백 쪽에 달하는 사건 기록이 산을 이루다 못해 바닥까지 내려왔다. 이 검사실에 있는 A 검사는 “올 초만 해도 검사실을 걸어다닐 수 있었는데, 이제는 걷기가 불편하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A 검사가 걸어가다 발에 치이고 밟히는 기록에는 사기·폭행·성범죄 등 일반 서민 피해자들의 억울한 목소리가 담겨 있을 것이다. 3대 특별검사팀에 검사들이 대거 파견을 가니 미제가 쌓여 일선 청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다고 한다. 특검 수사와 공소 유지 기간에는 범죄 피해를 당해도 사건 처리가 늦어지니 유의해야 한다.
이런데도 모든 검사를 하나로 싸잡아 비판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전체 검사 중 90% 이상이 민생 사건을 맡는 형사부 검사들로 이들은 요새 정말 힘이 안 난다고 입을 모은다. 사건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지는데 욕까지 먹으니 사기 저하가 일상이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차장검사는 “‘사건 좀 빨리 처리하라’는 말 절대 못한다. ‘조금 버티고 힘내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고 푸념했다. 검찰 해체로 자신의 미래도 불확실 하고 틈만 나면 손가락질을 받는다. 사기는 바닥이고 좌절감에 ‘언제 변호사 개업을 해야 하나’ 하루에도 수백 번 생각한다. 검찰 지휘부가 무슨 지시를 할 처지가 못 된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 주도해 지난 12일 국회는 검찰 특수활동비를 정부안 대비 40억 원가량 삭감했다고 한다. 검찰이 정치권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면 특활비를 삭감하는 돌림 노래가 계속된다. 그렇다고 정치권의 코드를 맞추자니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처럼 검찰 내부의 불명예를 뒤집어 써야 한다. 무엇을 해도 욕을 먹는 일이다.
이렇게 된 이상 민생 사건을 수사하는 대다수의 일반 검사들은 열심히 일을 할 하등의 동기가 없다. 지난 검경 수사권 조정 전만 해도 경찰을 지휘하는 검찰의 책임 소재가 명확해 서로 견제와 균형으로 일 처리가 빨랐지만 수사권 조정 이후 검경이 대등한 관계가 되자 사건 미루기도 일상이 됐다. 정치권은 적어도 약자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일하려는 검사들의 사기는 고려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검찰 지휘부의 “민생 사건 빠르게, 잘 처리하라”는 지시에 일선 검사는 “제가요? 왜요? 이걸요?” 말고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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