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늦은 밤 도착한 중국 단둥.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던 북중러 접경 지역을 답사하는 한국기자협회 연수의 마지막 방문지였다. 컴컴한 압록강 너머로 환하게 불을 밝힌 고층 건물들이 즐비했다. 북한의 청수관광특구였다. 전날 방문한 두만강 변 너머로 북한의 낙후한 농촌을 먼저 봤기 때문인지 화려한 야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화려한 도시가 단 100여 일 만에 조성됐다는 사실이다. 1년 전 이곳을 방문했다는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은 “당시 수해로 쑥대밭이 된 지역”이라며 “북한 정부가 재개발 방침을 결정하면서 도시로 환골탈태했다”고 전했다. 아무리 날림 공사라해도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100일의 기적(?)’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놀라울 뿐이다. 전문가들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 국방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 파병을 통해 28조 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40조 원의 70%에 달하는 규모다. 파병을 계기로 북러 밀착은 날로 확장 중이다. 러시아는 북한 희토류 광산에 관심을 갖고 두만강 교량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북한의 희토류 매장량 통계는 들쑥날쑥하지만 전 세계 2위에 달하는 매장량이 있다는 추정까지 있다.
청수 특구의 야경은 그동안 외신을 통해 짐작했던 ‘북러 혈맹’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만들었다. 이 풍경은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틈새를 찾아낸 북러 협력의 결과물이자, 우리나라 대북 정책의 시험대를 의미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언급하며 대화와 억지력을 병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런 복잡한 지정학적 현실을 의식한 발언으로 읽힌다. 문제는 이제 ‘햇볕’이 닿을 공간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억지력이 어느 정도이며 대화의 카드는 무엇인지도 의문이다. 어느 때보다 엄혹한 남북 관계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냉정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접근법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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