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이후 70% 넘게 치솟으며 5000 선을 향하던 코스피의 ‘대세 상승’ 흐름이 11월 들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인공지능(AI) 고점 논란이 다시 불거지며 미국 증시가 급락한 데다 원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외국인들이 다시 ‘셀코리아’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체질 개선 평가를 받던 코스피가 이틀 연속 100포인트 넘는 하락이 이어지며 변동성도 증폭되는 상황이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일 대비 2.85% 하락한 4004.42로 마감했다. 정부의 세제개편안 충격을 받은 8월 1일(-3.88%) 이후 최대 낙폭이다. 하루에만 코스피(97조 7000억 원)와 코스닥(13조 7000억 원)을 합쳐 총 111조 4000억 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증시가 롤러코스터를 타며 투자자들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도 급등했다. VKOSPI는 40.51을 기록하며 두 달 전(18.36)보다 두 배 이상 높아졌다.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충격 당시 연고점(44.23)에 근접한 수준이다. VKOSPI는 코스피200 옵션 가격을 바탕으로 시장이 예상하는 향후 변동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급락장일수록 상승하는 경향을 띤다. 최근에는 ‘포포(FOPO·고점 투자 공포)’ 심리와 위험 회피용 헤지 수요가 겹치며 오름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아울러 11월 코스피 시장의 ‘진폭’을 나타내는 일평균 일중 변동률도 3.24%로 지난달(1.80%) 대비 확대됐다. 일중 변동률은 당일 지수의 고가·저가 평균값에 비해 변동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로 장중 등락 폭이 넓을수록 커진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VKOSPI가 30포인트 대에 진입하면 투자 경고 단계로 판단한다”며 “변동성 상승은 투자 기회와 위험이 동반 증폭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내부의 돌발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시장 충격을 키운 것은 외국인이다. 외국인은 이날 코스피에서만 2조 5183억 원을 순매도했다. 지난달 5조 3370억 원을 순매수했던 외국인은 3일 7964억 원, 4일 2조 2349억 원을 순매도한 뒤 이날까지 사흘 연속으로 총 5조 5496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해서는 총 3조 1163억 원을 순매도하며 역대 최대 기록을 썼다. 관심은 9월과 10월 연속 ‘바이코리아’ 기조를 보이던 외국인이 다시 ‘셀코리아’로 돌아설지 여부다.
외국인이 매도 강도를 높인 배경에는 인공지능(AI) 거품 논란, 원화 약세, 그리고 차익 실현 욕구가 동시에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날 뉴욕증시에서는 AI 관련 종목들이 일제히 조정을 받았다. AI 소프트웨어 기업 팰런티어는 기대 이상의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주가가 7.9% 급락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3.96%)와 AMD(-3.67%), 브로드컴(-2.81%) 등 주요 반도체 종목 역시 하락세를 보였다. 시장 주도주들이 하락하자 나스닥지수도 2.04% 하락하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다우지수도 각각 1.17%, 0.53% 내렸다.
여기에 역대 최장 기간인 35일째 이어지는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경로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외국인투자가들의 위험 회피 성향을 자극했고 강달러가 지속되며 원화 약세에 따른 시세 차익 실현 욕구가 커졌다.
외국인들의 물량 폭탄에 상승장을 이끌던 대형주들도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삼성전자(-4.10%)와 SK하이닉스(-1.19%), 그리고 LG에너지솔루션(-1.90%), 현대차(-2.72%), 두산에너빌리티(-6.59%) 등 주요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이 급등 피로와 차익 실현 매물에 눌리며 하락했다.
일본 증시도 미 AI 고점론에 영향을 받으며 동반 약세를 보였다.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2.50% 급락한 5만 212.27엔을 기록하면서 4거래일 만에 하락 마감했다. 최근 닛케이지수 상승을 이끌어온 소프트뱅크그룹도 AI 버블 우려로 10.02% 하락했다.
단기 변동성이 커졌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급락을 추세 전환보다는 ‘단기 급등 이후 숨 고르기’로 해석했다. 기업 실적 개선과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 등 증시 펀더멘털이 견조한 만큼 상승 추세가 꺾였다고 보긴 어렵다는 평가다. 특히 국회에서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이 예정대로 추진되면 외국인의 국내시장 신뢰는 유지될 것으로 봤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이 단기간 급등한 만큼 조정이 불가피했지만 반도체 업황이 견조해 외국인도 다시 매수로 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태봉 iM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급등 구간의 차익 실현 욕구에 달러 강세와 단기 유동성 경색이 겹친 것일 뿐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서 이탈하는 신호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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