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카펙발레오의 기술유용 행위를 적발하고 제재에 나섰다. 특히 하도급 업체가 개선을 위해 제안한 기술정보(ECR)를 원청이 빼앗아 자기 도면에 무단 활용한 사건에 대해 첫 제재가 내려졌다. 제조업 공급망 전반에서 중소 협력업체 기술을 사실상 공짜 연구소처럼 활용하는 악습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26일 카펙발레오가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무단 사용하고 기술자료 요구서면을 교부하지 않는 등 하도급법을 위반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4억 1000만원을 부과했다. 이번 사건은 자동차 부품 개발 과정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기술정보 갈등을 제도적으로 판단한 사례로, 향후 기술유용 분쟁 대응에 법적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위 조사 결과 카펙발레오는 2019년 하도급업체와 토크컨버터 부품을 납품받는 과정에서 협력사로부터 받은 기술사양변경 요청서(ECR) 정보를 도면에 몰래 반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도급 업체가 불량률을 낮추기 위해 개발한 치수 변경 수치(제안값)을 무단으로 사용해 원청 도면에 편입한 뒤에 이를 다른 경쟁업체에 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자료는 제품 품질을 향상시키는 핵심 기술정보로 독립적 경제적 가치가 있는 기술 자료에 해당한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는 이번 제재가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ECR에 담긴 제안값도 법률상 기술자료로 본 첫 사례라는 점에서, 앞으로 원청이 하도급업체의 기술 개선 제안을 사실상 탈취하는 행위에 대해 규제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당한 협의 없이 기술자료를 자기 도면에 이전하거나 제3자에 제공한 행위는 명백한 기술유용”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기술유용 외에 추가 위법 행위도 적발했다. 카펙발레오는 2017~2021년까지 6개 하도급 업체에 대해 제조공정도, 품질관리 계획 등 198건의 기술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면서 정해진 서면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도급법은 원청이 기술자료를 요구할 경우 요구 목적, 비밀 유지 방법, 대가 지급 기준 등이 담긴 협의 서면을 반드시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절차가 무시된 것이다.
이번 사안은 국내 제조업 전반에서 고질적으로 되풀이되는 원청 기술탈취와 하도급 종속 구조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다만 중소·중견 협력업체의 기술개발 성과가 원청에 흡수되는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ECR은 협력업체가 개발 과정에서 시행착오 끝에 확보한 노하우의 집약체”라며 “원청이 기술개선을 요구해놓고 정작 그 기술을 갈취하는 구조는 업계 전반에 만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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