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000조원 넘게 쌓인 기업들의 현금·예금이 제대로 활용되는지 점검하고, 설명 책임을 강화해 ‘쉬는 돈’을 투자로 유도하는 방안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했다. 새로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역시 비효율적인 기업 경영과 내부 유보에 강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련 움직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금융청은 전날 5년 만의 기업지배구조 지침 개정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상장사들이 현금과 예금을 과도하게 쌓아두지 않고,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지 스스로 설명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일본 증시 프라임시장 상장기업들의 현금·예금은 올해 3월 말 기준 115조엔(약 1085조원)에 달한다.
금융청은 현금과 예금을 투자 등에 유효하게 활용하고 있는지 검증을 요구하고, 투자자에 대한 설명 책임도 명확히 할 계획이다.
금융청이 마련한 전문가 회의 관계자들은 "현금 활용책을 공개해 이해관계자에게 설명하는 것은 경영자의 중요한 일"이라며 대부분 방향성을 지지했다. 다만 "기업이 현금을 보유하는 것의 합리성 자체가 부정되는 풍조로 향하지 않도록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카이치 정권 하에서도 현금을 많이 보유한 기업에 대한 압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저서에서 기업 현금에 과세하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법인기업 통계에서 기업의 현금이 총 200조엔이 넘는다며 "1% 과세 시 2조엔 넘는 세수가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자민당 총재선거에서도 다카이치 총리는 내부 유보 사용처를 명시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나카가와 가즈야 노무라증권 ESG팀장은 "다카이치 총리가 하려는 것과 금융청의 방침이 같은 방향이라 유보 현금 검증을 포함한 기업지배구조 지침 개정은 착실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번 개정에서는 기업의 공시 부담을 완화하는 작업도 추진된다. 이미 관행화되거나 규정화된 항목은 삭제해 지침을 간소화한다는 계획이다.
닛케이는 "기업지배구조 개혁은 착실히 진행돼 지난 10년간 일본 주식 상승을 뒷받침해왔다"며 "이번 지침 개정으로 한층 더 투자자 관점의 경영을 추진해 일본 기업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시점에 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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