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혐의로 기소된 김범수 카카오(035720) 창업자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카카오 그룹이 큰 고비를 일단 넘기게 됐다. 최근 3년 동안 강도 높은 사법 리스크에 먹구름이 가실 날 없었던 카카오 입장에서는 경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며 그룹의 사활을 걸고 진행해야 하는 인공지능(AI) 등 핵심 신사업 분야에 가속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2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은 전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창업자를 비롯해 주식회사 카카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에도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김 창업자는 지난 2023년 2월 SM엔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주가를 공개매수가보다 높게 고정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왔다.
김 창업자는 특히 지난해 8월 구속기소되며 보석 허가까지 100일간 구치소에서 수감 상태로 재판을 받아 왔고, 건강 악화로 암 수술과 재수술을 받고 입퇴원을 반복하는 등 개인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재수술을 앞둔 지난 3월에는 그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CA협의체 의장에서 물러나며 그룹 전반에 짙은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카카오는 판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재판부의 현명한 판결에 감사드린다"며 "그간 카카오는 시세조종을 한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오해를 받아왔는데, 1심 선고로 그러한 오해가 부적절했음이 확인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2년 8개월간 이어진 수사와 재판으로 카카오 그룹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급격한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힘들었던 점은 뼈아프다"며 "이를 만회하고 주어진 사회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김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카카오 내부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절대적이라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1심 판결 이후 아직 절차가 남아 있지만, 김 창업자의 무죄 판결로 카카오가 수장의 사법 리스크라는 최대 위험을 우선 떨치며 위축된 기업 분위기에 활력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카카오는 최근 15년만에 진행한 그룹의 핵심 본체인 카카오톡 업데이트 과정에서 친구탭 개편을 놓고 사용자들의 불만이 폭주하며 주가 등 모든 측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이달 말 오픈AI의 챗GPT를 카카오톡에 결합하고, 자체 개발한 AI 카나나의 카카오톡 결합 등 중요한 실험을 앞두고 있는 만큼 그룹 입장에선 오너 리스크를 사전에 털어낼 수 있었던 것은 크게 힘이 되는 요건이라 볼 수 있다.
아울러 카카오 법인이 무죄를 받으면서 카카오뱅크(323410) 대주주 자격 유지 등에도 위험 요소를 털게 됐다. 현행 인터넷전문은행법상 산업자본이 금융사의 지분 10% 초과 보유할 경우 최근 5년 내 벌금형 등 법령 위반이 없어야 한다. 적격성에 문제가 생기면 카카오는 6개월 내 10%를 초과하는 카카오뱅크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카카오는 6월말 기준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6%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을 유지하면서 또 다른 신사업인 스테이블 코인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한숨 돌린 김 창업자가 당장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업계 일각에선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의 이사회 의장 복귀 이후 두나무와 합병을 비롯한 과감한 신사업 드라이브와 비교해 김 창업자의 부재 자체가 카카오 입장에서는 사실 최대의 악재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그룹 관계자는 "김 창업자는 일단 치료와 건강 회복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현재로서는 (복귀 시점을)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김 창업자의 무죄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반발했다. 서울남부지검은 전일 언론 공지를 통해 '검찰의 진술 압박' 등을 지적한 1심 판결에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판결문을 분석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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