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시세조종 혐의를 받았던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데에는 법원이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을 신빙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점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재판부는 “별건 수사와 압박성 조사가 있었다”며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검찰의 수사 관행을 질타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양환승 부장판사)는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센터장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검찰이 제시한 핵심 증거인 이 전 부문장의 진술이 일관성과 신빙성이 모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2023년 2월 카카오가 하이브와 SM엔터 인수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당시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와 원아시아파트너스 등이 공모해 약 1100억 원 규모의 SM엔터 주식을 고가 매수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고 주장했다. 김 센터장이 이러한 거래를 사전에 보고받고 승인했다는 것이 검찰의 핵심 논리였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부문장은 검찰 조사에서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를 만났을 때 자신의 휴대폰으로 배 전 대표와 스피커폰 통화를 연결했고 그 자리에서 배 전 대표가 김 센터장에게 SM엔터 주식 매입을 요청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전 부문장의 진술이 수차례 번복되고 내용상 모순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별건 수사와 반복된 구속영장 청구 등으로 극심한 압박을 받은 가운데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진술을 바꿀 동기가 충분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는 이후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신청해 기소를 피했다”며 “수사와 재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명확한 동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전 부문장의 진술이 없었다면 피고인들이 법정에 서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부문장은 자신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카카오엔터가 고가에 인수하도록 유도해 회사에 약 319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로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 같은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또 하이브의 SM엔터 주식 공개매수 기간 중 카카오의 대규모 장내 매수가 시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만으로 시세조종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카카오의 매수 시점과 주문 간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시세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거나 고정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시 시장에서도 하이브의 공개매수 종료 이후 SM엔터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만큼 카카오의 매수는 시세조종이 아닌 ‘물량 확보’ 목적이었다는 피고인 측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공개매수 기간 동안 SM엔터의 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이브의 공개매수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며 “김 센터장 등이 굳이 1200억 원을 들여 공개매수를 저지하려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나아가 당시 카카오가 반드시 SM엔터의 경영권을 확보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도 지적했다. 카카오 내부에서 은밀히 경영권 인수 계획을 세웠거나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한 공모가 있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검찰의 수사·기소 관행에 대한 비판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불법 합병 및 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확정받은 바 있다. 당시에도 검찰은 대검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를 무시하고 기소를 강행했지만 1심부터 대법원까지 세 번의 재판 모두 ‘전부 무죄’로 결론났다.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기계적 기소’ ‘먼지털기식 수사’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번 재판부 역시 선고 말미에 “본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별건을 강도 높게 수사해 피의자나 관련자를 압박하는 방식은 진실을 왜곡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수사 주체가 어디든 이제는 이런 방식이 지양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센터장은 2023년 2월 SM엔터 인수 과정에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주가를 공개매수가보다 높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지난해 8월 구속기소됐다. 이후 같은 해 10월 보석이 허가돼 불구속 상태로 전환됐으며 구속 기간을 포함해 총 1년 2개월간 재판을 받아왔다. 검찰은 이번 판결 내용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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