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23년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후 검찰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각각 두 차례 이상 압수수색을 받았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의 자택과 사무실, SM엔터도 여러 차례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검찰과 금감원으로부터 소환 조사를 받은 카카오 임직원은 수백 명에 이르렀다. 카카오 관계자는 “계속되는 압수수색과 임직원 조사를 겪으면서 그동안 사법 리스크 대응을 의사 결정의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었다”며 “1심 무죄 판결은 이제 카카오가 사법 대응이 아니라 다시 사업을 우선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게 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21일 법원이 SM엔터 시세조종 혐의를 받은 김 센터장과 카카오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면서 카카오그룹은 큰 고비를 넘기게 됐다. 창업자의 거취와 주요 계열사의 지배구조 등 거버넌스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다.
특히 그동안 재판에 쏠렸던 가용 자원을 재배치할 수 있게 되면서 인공지능(AI)을 비롯한 핵심 신사업 분야가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카카오는 당장 이달 말 오픈AI 챗GPT의 카카오톡 결합과 자체 개발한 AI 카나나의 카카오톡 결합 등 중요한 실험을 앞두고 있다. 시장 반응에 따라 추가 투자 등 결단이 필요할 수 있는 만큼 오너 리스크를 사전에 털어낸 점은 카카오의 대응 여건을 강화하는 요인이다. 그룹 관계자는 “카카오의 사업 환경에서 김 센터장의 위상과 역할은 과거에도 컸고 앞으로도 클 것”이라며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만큼 그룹 입장에서는 정말 날개를 단 기분으로 AI를 비롯한 신사업 등에서 확실한 드라이브를 걸 기회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금융 시장 공략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무죄 판결로 카카오의 카카오뱅크 지배구조에 대한 리스크를 덜어내면서다. 현행 인터넷전문은행법상 산업자본이 금융사 지분 10% 초과 보유 시 최근 5년 내 벌금형 등 법령 위반이 없어야 한다. 만약 카카오 법인이 벌금형 이상을 확정받을 경우 6개월 내 10%를 초과하는 카카오뱅크 지분을 처분해야 했다. 카카오는 상반기 말 기준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 리스크는 그동안 카카오가 디지털금융 사업을 추진하는 데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됐다. 그 사이 네이버가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의 포괄적 주식 교환을 추진하며 디지털금융 생태계 조성을 본격화한 것과 대조적인 행보였다.
이는 카카오 내부에서 AI와 함께 특히 실기 우려가 컸던 대목이다. 카카오는 이날 1심 무죄 판결 후 공개한 공식 입장에서 “2년 8개월간 이어진 수사와 재판으로 카카오그룹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며 “특히 급격한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힘들었던 점은 뼈아프다”고 말하기도 했다. 카카오의 또 다른 관계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에는 우리도 관심이 있다”며 “사법 리스크가 어느 정도 해소돼 AI와 함께 이제 사업 추진 여건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카카오엔터와 SM엔터도 사업 추진에 직접적인 동력을 얻게 됐다. 애초 카카오는 SM엔터 인수를 통해 여러 가수의 글로벌 지적재산(IP)을 멜론 등 플랫폼과 결합하고자 했다. 다만 SM엔터 인수전이 그룹 사법 리스크의 진앙지가 되면서 2년간 적극적인 사업 추진은 사실상 어려웠다. 카카오엔터 측은 이번 1심 판결을 계기로 글로벌 음원 유통에 대한 네트워크 등을 활용해 에스파 등 SM엔터 소속 아티스트들의 글로벌 활동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SM엔터의 IP를 이용한 게임 개발, 웹소설 출판 등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위축된 조직 분위기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이사는 이날 사내 공지로 “카카오톡 빅뱅 개편 이후 모두가 긴장과 노력을 이어가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최종 결론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함께 일하는 카카오가 ‘위법한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재판에 의미를 부여했다. 정 대표는 “아직 남아 있는 어려움과 앞으로 다가올 도전도 여러분과 함께라면 충분히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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