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와 영재학교 출신 학생들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과학기술원을 거쳐 의대에 진학하는 이른바 ‘편법 진학’ 논란이 확산하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탈 방지 제재나 진로 적응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지만 근본 대책은 아닌 것 같다”며 “교육부와 협의해 다각적으로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과학고와 영재학교는 의대와 약대 진학을 막기 위해 장학금 환수 등의 제재를 시행하고 있지만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에 진학했다가 중도에 의대로 옮기는 경우에는 사실상 제재가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과학고·영재학교 출신으로 과학기술원에 입학했다가 중도에 자퇴하거나 미복학한 뒤 의약학 계열로 진학한 학생은 32명으로, 전체 이탈자의 42%를 차지했다. 2023년에는 이탈자의 34%, 2022년과 2021년에는 각각 45%, 62%가 의약학 계열로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4년간 이 같은 방식으로 의대로 진학한 학생은 총 143명에 달한다.
특히 KAIST의 경우 의대 진학을 이유로 한 중도 이탈 비율이 4년 평균 54%에 이르렀다. 이 중 83명은 1학년도 마치기 전에 학교를 그만뒀으며, 한 학기도 채우지 않고 휴학이나 자퇴한 사례도 6명으로 파악됐다.
한 의원은 “한 유튜브에서 ‘KAIST에 3일 다니고 의대에 갔다’며 무용담처럼 자랑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국가 예산으로 지원받아 공부한 과학고·영재학교 출신이 이런 식으로 편법을 이용해 의대로 가는 건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배 부총리는 “과학기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세금으로 지원하는 교육 제도가 개인의 의대 진학 통로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감에서는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에 비해 과학기술 경쟁력과 기초과학 연구 투자가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배 부총리는 “AI(인공지능) 혁신을 활용해 과학기술 연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노벨상에 도전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의 노벨상 수상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투자가 우리에게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지금부터라도 기초과학 분야에 제대로 투자하고 과기정통부가 중심이 되어 체계적으로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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