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독일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정교수를 지내고 미헬슈타트 시립미술관에 영구 전시관을 개설한 유일한 비독일 출생 작가. 독일의 쟁쟁한 예술가들과 겨뤄 18세기 후반 지어진 유서 깊은 함부르크 교회 재건 사업에 참여하고 프랑스 문학 교과서에 그림이 실린 작가. 한국보다 세계가 먼저 발견한 작가. 2022년 10월 18일 78세로 독일에서 작고한 노은님(1945~2022)의 이야기다.
독일 현대 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노은님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15일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개막했다. 18일 작가의 작고 3주기를 맞아 열리는 회고전으로 노은님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80~1990년대 작품 17점이 엄선됐다. 가로·세로 3m에 가까운 대작들이 다수 포함된 전시에는 검정과 하양, 주홍과 같은 강렬하고 단조로운 컬러를 거친 붓질로 펼쳐낸 회화가 주를 이룬다. 다채로운 컬러감을 자랑하는 후기 작업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노은님은 이때를 “내가 생명을 그리던 시기”라고 불렀다. 노은님은 불과 물, 공기와 흙이라는 네 개의 원소를 바탕 삼아 자연과 생명의 본질을 표현하려 했고 훗날 ‘생명의 작가’라는 수식어를 얻는다.
실제 전시장은 압도적인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동양의 붓에 아크릴 물감을 발라 거침 없이 펼쳐낸 그의 그림을 두고 독일 평단은 ‘동양 명상과 서양 표현주의의 결합’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전시장 입구를 너머 마주하는 ‘두나무 잎사귀 사람들’을 보면 검은 물감이 거칠게 채색된 대형 한지 위로 떠오른 주홍빛 두 개의 물체가 강렬하다. 언뜻 보면 물고기 같지만 달리 보면 새 같기도, 혹은 낙엽이나 사람 같기도 한 이 존재는 어둠 속에서 튀어나올 듯 꿈틀거린다. 가로 2.7m 거대한 여백에 세 개의 검은 존재가 자리한 ‘나무 가족’ 역시 선사시대 동굴 벽화와 같은 원시적 생명력이 가득한 작품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듯 소박해 보이지만 실제 작품 앞에서 느끼는 감상은 완전히 다르다. 사람인지, 동물인지, 식물인지 정체가 모호하지만 살아 숨 쉰다는 감각은 선명하다. 장식 없이 그어진 굵고 검은 선이 주는 자유로운 에너지가 압도적이다.
이번 전시 작품은 모두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의 소장품이다. 박 회장과 노은님의 인연은 백남준(1932~2006)에서 비롯됐다.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박 회장을 만난 백남준은 “독일에 노은님이라는 그림 잘 그리는 여자가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 한마디를 놓치지 않았고 이듬해 서울에서 백남준·노은님 2인전을 열었다. 1970년 파독 간호 보조원으로 함부르크를 향했던 노은님의 ‘금의환향’인 셈이다.
노은님은 독일 병원에서 일하며 틈틈이 그린 그림이 병원 간호장의 눈에 들어 병원 내 개인전을 열고, 그 개인전을 찾은 독일 유력 작가의 권유로 뒤늦게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1979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유럽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켜 1982년 함부르크 예술후원금과 본 시립 쿤스트폰즈상을 수상하고 1984년 백남준, 요셉보이스와 함께 ‘평화를 위한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등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그의 이런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한국에서는 오히려 약점이 됐다. ‘파독 간호사 출신 화가’라는 꼬리표가 끈질기게 따라붙은 탓이다. 권준성 노은님 아카이브 관장은 “노 작가는 일부러 자신이 간호사 자격증이 없는 간호보조원이었다는 사실을 밝힐 정도로 ‘파독 간호사’ 꼬리표를 떼고 싶어했다”면서 “늘 ‘내 고향은 예술’이라며 작업 이외의 것으로 규정되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권 관장은 이번 회고전을 통해 노은님에 대한 불필요한 수식어가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생각도 밝혔다. 생명력 가득한 작품들 가운데 표제작으로 ‘빨간 새와 함께’를 고른 이유이기도 할 테다. 붉은 눈을 가진 검은 인물이 붉은 새를 끌어안은 그림을 두고 권 관장은 “노은님의 작품 속 생명은 모두 노은님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한다”며 “그의 그림이 관람객들에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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