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이 붕괴하면서 일본 정치권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당장 다음 주로 예상되는 총리 지명 표결에서 일본 첫 여성 총리를 노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자민당 총재의 총리 선출 여부가 불투명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야권에서는 후보 단일화를 통한 정권 교체 시도가 본격화하고 있다. 여야 모두 정계 재편 시나리오를 저울질하며 치열한 수싸움이 펼쳐지는 양상이다.
12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20일 또는 21일이 총리 선출을 위한 임시국회 소집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각 진영은 ‘우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서 10일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가 다카이치 총재와의 회담에서 연정 이탈을 통보한 것이 트리거가 됐다. 정치자금 규제 강화 방안을 둘러싸고 양당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1999년부터 이어진 연합은 막을 내리게 됐다. 일본의 총리 지명 선거는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에서 각각 실시되며 결과가 다를 경우 중의원 결과를 우선한다. 그만큼 중의원의 의석 분포가 결정적인 셈이다.
현재 중의원에서 자민당은 196석으로 제1당이지만 총 465석 중 과반(233석)에는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과거에는 공명당(24석)과의 연립으로 220석을 확보했으나 이번에 공명당과의 연정이 무너지며 최악의 경우 정권을 빼앗길 수도 있는 처지에 놓였다. 반면 야권은 입헌민주당 148석, 일본유신회 35석, 국민민주당 27석 등 3당 합계가 210석에 달해 표 대결 구도가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자민당 내에서는 단독으로 다카이치 내각이 출범하는 방안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 전제 조건은 각 당이 분열해 표가 결집하지 않는 경우다. 하지만 이 역시 불확실한 만큼 자민당은 표결 전까지 최대한 연합 전선을 펼치겠다는 구상이다. 이날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자민당은 일본유신회와의 공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성사될 경우 과반에는 미달하지만 231석을 확보하게 되면서 결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다만 다카이치 총재를 비롯한 자민당 간부들과 유신회 간의 인맥이 얕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다카이치 총재는 이달 5일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와 회동해 협력을 타진했지만 공명당의 연정 탈퇴 이후 국민민주당은 자민당과의 협력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권 교체 시나리오’도 급부상하는 분위기다. 야당이 결집해 다카이치 총재의 총리 선출을 저지하고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대표를 단일 후보로 내세우는 방안이다. 이 경우 2012년 이후 13년 만의 정권 교체가 현실화된다.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좀처럼 없는 기회”라며 “서로의 차이를 넘어 공통점을 찾아 협력할 수 있다면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국민민주당은 원전·헌법 등에서 생각의 간극이 크다는 이유로 협력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번 총리 선출 결과와 관계없이 일본 정치가 본격적인 다당제 시대로 진입하면서 정치 불안정이 상수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다당화 양상이 한층 심해지고 과반수 찬성을 얻어 정치를 전진시키는 다수파 형성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각 당이 국민의 환심을 사려고 안정적 재원 확보를 방치한 채 선심성 정책에 치우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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