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국가 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시장의 큰 우려를 사고 있는 가운데 최근 프랑스 국채 금리가 일부 민간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금리보다 높아지는 이례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에서 프랑스 정부의 신용도가 자국 주요 기업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13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골드만삭스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로레알, 에어버스, 악사 등 10개 프랑스 기업이 발행한 채권 금리가 비슷한 만기의 프랑스 국채를 밑돌았다. 2006년 이후 최대 규모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전체에서는 80개 이상 기업의 회사채 금리가 프랑스 국채보다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통상 국채 금리는 기업 채권 금리의 기준선 역할을 한다. 유로존에서는 독일 국채가 가장 위험이 작은 자산으로 평가되며 다른 회원국 국채는 여기에 가산금리를 붙여 거래된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이같은 전형적인 구조가 뒤집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예컨대 프랑스 명품 기업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가 2023년에 발행해 2033년에 만기를 맞는 회사채(쿠폰금리 연 3.5%)는 발행 이후 한동안 2023년 11월 발행된 프랑스 10년물 국채(쿠폰금리 연 3.5%)보다 0.2~0.6%포인트 높은 금리로 거래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회사채 금리가 국채보다 최대 0.07%포인트 낮아지며 발행 이후 가장 큰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는 프랑스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가부채 비율은 유로존에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지난해 재정 적자는 GDP 대비 5.8%로 유로존 평균(약 3.1%)을 크게 웃돌았다. 이런 이유를 들어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피치는 “향후 몇 년간 국가부채 안정화를 위한 명확한 시야가 없는 상태”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24년 113.2%에서 2027년 121%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국채 공급 과잉으로 해석한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펀드매니저 마이크 리델은 “정부는 여전히 대규모로 채권을 발행하고 있지만 기업은 그렇지 않다”며 이는 국채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보다는 과도한 발행 물량을 반영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글로벌 회사채 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점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스위스 은행 J 사프라 사라신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카르스텐 유니우스는 “프랑스 국채가 회사채와 같은 수준에서 거래된다는 것은 더는 무위험 자산이 아니라는 신호”라며 “이는 신흥국 국채에서나 흔히 보이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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