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감수성은 좋은 이미지를 자주 본다고 해서 길러지는 게 아니라 어렸을 때 오감을 통한 통감각적 경험과 연결되는 게 중요합니다. 어린이 미술관은 그런 경험을 공유하고 지지하는 공간이죠.”
김이삭 헬로우뮤지움 관장은 11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헬로우뮤지움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년시절은 예술적 안목을 키우고 자신의 취향을 찾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며 어린이 미술관의 존재 가치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헬로우뮤지움은 2007년 국내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비영리 사립 어린이 전문 미술관이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관교육을 전공한 김 관장은 1세대 박물관 에듀케이터다. 미국 스미스소니언자연사박물관 한국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등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어린이 미술관을 열었다.
‘미술 놀이터’를 표방하는 헬로우뮤지움은 정적이고 엄숙한 기존의 박물관·미술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어린이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이를 토대로 부모와 소통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김 관장은 “학업 부담 때문에 갈수록 경험의 기회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아이들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디렉트 러닝’을 위한 곳이 바로 어린이 미술관”이라며 “사전에 작가들과 협의를 거쳐 아이들이 만질 수 있는 작품 위주로 전시하고 만질 수 없는 작품은 액자로 보호하는데, 혹시 손상이 생기더라도 보수가 가능한 작품들을 선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관장은 미술 작품이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동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축복받은 일”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 집 근처 미술관에서 루이즈 부르주아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보면서 자랐다는 그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을 접하며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혼자 생각해보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면서 “그런 경험들이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귀중한 자산으로 쌓였다”고 돌아봤다.
김 관장은 어린이들이 다양한 작품을 접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미술관의 운영 목표라고 했다. 헬로우뮤지움은 현대미술 작품을 위주로 전시한다. 이에 대해 그는 “지금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어린 시절 미술관에서 접했던 현대미술을 향유하면서 사는 첫 세대”라며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어린이들의 안목을 키우고 취향을 찾을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류 확산과 MZ세대의 투자 열풍으로 한국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면서 최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전시·교육 공간도 늘고 있다. 헬로우뮤지움 개관 당시 유일했던 어린이 미술관은 10여 곳으로 확대됐다. 김 관장은 “예술을 향유하고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예술적 자본’이 마련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박물관 형태의 체험식 전시 공간은 늘었지만 정작 예술 작품 감상을 중심으로 한 시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김 관장은 경제는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어린이 미술관이 더 늘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수많은 정보와 자극적인 콘텐츠를 접하지만 정작 외부와 소통하고, 적절하게 표현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면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역량인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공간 중 하나가 어린이 미술관”이라고 말했다.
김 관장의 최종 목표는 서울과 지방의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는 일이다. 최근 지방 도시에서 진행된 전시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경험했다는 그는 “미술관은 아이들에게 몇 안 되는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문화 공간이자 해방구”라며 “이런 예술적 경험을 더 많은 아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지방 전시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 관장은 어릴 적 아빠와의 산책에서 영감을 받아 동화 작가가 된 에릭 칼의 사례를 소개하며 “예술 교육의 시작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서 간단하게 이뤄질 수 있다”면서 “집에 걸린 작은 그림 한 점, 화분 하나가 아이들의 감수성을 키우는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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