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중인 다문화 및 재외국민 출신 장병들이 부대 내에서 인종과 출신을 이유로 심한 조롱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창호)의 조사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는 올해 4~5월, 군인권보호위원회 소속 위원과 조사관들이 전국 10개 육·해·공군 부대를 직접 방문해 병사와 간부를 대상으로 설문과 면담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에는 외국 국적 부모를 둔 다문화 장병뿐 아니라 조기 유학이나 이민 등의 이유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성장한 ‘이주 배경 장병’도 포함됐다.
조사 결과 “중국에서 왔다고 간부가 대놓고 ‘짱깨’라고 불렀다. 한국어가 서툰 병사의 전투복 태극기 패치를 거꾸로 붙이고, ‘반갑습네다’라며 북한군 흉내를 낸 선임도 있었다"고 진술한 장병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주 배경 장병들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은 언어 장벽(56.3%)으로 드러났다. 일반 병사 역시 61.1%가 이를 주요 고충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훈련소 단계에서 언어 능력을 평가하거나 이를 반영해 보직을 배정하는 시스템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일부 장병은 한국어가 서툰 상태에서 위병소 근무나 GOP 경계병에 배치되기도 했으며, 이는 군 조직 내 안전사고와 작전 수행 혼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인권위는 과거 언어 때문에 갈등을 겪던 이주 배경 장병이 GOP 근무 중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를 언급하며, “언어 능력을 고려한 보직 배치는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장병 인권과 조직 안정성을 위한 핵심”이라고 꼬집었다.
교육 측면에서도 문제가 심각했다. 국방부 훈령상 병영 내 다문화 이해 교육을 연 2회 이상 실시해야 하지만, ‘교육을 받은 기억이 있다’는 응답은 12.7%에 불과했다. 일부 부대에서는 아예 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교육이 단순 행사로 끝나선 안 된다”며, 훈련소 정규 교육과정 내 편성, 민간 전문가 강의 도입, 교육 효과 평가 체계 마련 등 실효성을 강화할 방안을 권고했다.
휴가와 여비 제도에서도 차별이 존재했다. 국외에 본가가 있는 병사는 휴가 시 항공료 부담이 크지만, 병무청에 ‘입영희망원’을 제출하지 않으면 여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실제로 제도를 미리 알지 못한 일부 병사는 수백만 원을 자비로 내거나 휴가를 포기하기도 했다. 육군과 공군은 국외 연고 병사에게 최대 5일의 휴가 가산 규정을 두고 있지만, 해군과 해병대는 명확한 관련 기준이 없어 부대별 편차가 나타났다.
국방부가 ‘차별 방지’를 이유로 이주 배경 병사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인권위는 “차별하지 않는 것과, 특수한 상황에 있는 병사를 방치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여군이나 배려 장병과 마찬가지로 이주 배경 병사에 대해서도 병력 현황을 파악하고 실질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인권위는 △국방부의 기초 현황 파악 및 통계 구축 △언어 능력 기반 보직 배치 △정규화된 인식 개선 교육 △휴가 및 여비 제도 개선 △‘다문화’ 대신 ‘이주 배경’ 병사 용어 사용 등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이주 배경 병사는 더 이상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다”라며 “병력 자원이 급변하는 시대, 군도 포용성과 실효성을 갖춘 인권 정책을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군 내 이주 배경 장병은 약 1000명 수준이며, 한국국방연구원은 2030년경 1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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