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도를 넘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달 24일. 경주국립박물관 내 한편에 들어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장 공사 현장은 휴일에도 인부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형 크레인이 자재를 옮기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달 21일 기준 경상북도가 발표한 만찬장의 공정률은 60% 수준. 6월만 해도 5%에 불과했지만 두 달 만에 빠르게 올라왔다. 불안감도 있다. 배선·배관 공사와 인테리어 공사 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일반 건물의 경우 터닦기와 골조 공사 기간만큼 내부 공사도 걸린다”며 “예상치 못한 변수도 있을 수 있고 특히 완공 후 시뮬레이션 등의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주는 APEC 준비로 분주하다. 휴일에도 아랑곳없이 보도블록을 설치하고 가로수마다 물주머니를 매달아 폭염에 나무가 말라죽지 않도록 했다. 정상회의장 주변 도로는 포장이 끝났지만 차선은 표시되지 않은 상태다. 두 달도 남지 않은 APEC 정상회의에 시민들도 걱정이 만만치 않았다. 삼릉 인근의 한 음식점 사장은 “10월은 단풍과 신라문화제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극성수기인데 APEC까지 열리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나. 경주는 작은 도시”라고 말했다.
정부도 노심초사하는 모습인데 가장 큰 걱정은 역시 숙소다. 경상북도는 경주 보문단지 내 정상회의장이 들어서는 화백컨벤션센터(HICO) 반경 3.5㎞ 이내에 4400여 실의 숙소를 확보하고 10㎞ 이내에 1만 2000여 실을 마련했다. 2005년 부산 APEC 당시 4700여 실을 확보한 것과 비교해 문제없다는 것인데 부산 APEC보다 10월 말 열리는 경주 APEC에 훨씬 많은 정상급 인사와 경제계 거물들이 오고 부산은 숙박 인프라와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는 만큼 단순 비교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경주 APEC 참석을 언급한 만큼 미중 정상이 만나는 등 ‘빅 이벤트’가 성사되면 수행원 등 참가자가 급증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기존 예상 인원인 2만 명에서 3만 명 가까이로 참가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려 ‘플랜B’ 마련은 불가피하다.
경주의 대형 숙박시설이 전반적으로 낡은 것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실제로 보문단지 인근의 한 콘도는 운영을 시작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리모델링 등을 하지 않아 벽지가 찢어지고 복도 바닥에 얼룩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VIP 참가자가 아닌 일반 참가자들에게 배정된 숙소가 행사장과 너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경제인들에게 배정된 10여 개 숙박시설 중 베스트웨스턴경주나 엘라포니시호텔은 정상회의장에서 차로 40분가량 떨어져 있다. 마우나오션리조트는 50분이 걸린다. 황남동에서 만난 한 주민은 “산속에 동떨어져 있거나 바닷가에 있는 시설”이라며 “대중교통도 좋지 않다”고 꼬집었다.
해외 손님들의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할 공항 관련 우려도 있다. 8월 하순에 찾은 김해국제공항 입국장은 대체로 한산했지만 한 시간 전 도착한 비행기의 탑승객들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주차난 역시 고질적이다. 공항의 한 직원도 “비행기가 한꺼번에 몰릴 경우 수하물을 찾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인천국제공항에 내려 KTX를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KTX 경주역에서 행사장까지 가려면 택시나 렌터카·버스 등을 이용해야 하지만 넓은 역사에 비해 승객들의 대기 공간은 협소했다. 정부와 도가 치밀하게 준비하면서도 ‘운영의 묘’를 살리는 유연성과 노련함이 중요하다고 행사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배경이다.
공식 행사와 함께 참가자들이 다채롭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 등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공식 행사장 이외 문화시설이나 회의 공간 등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APEC 행사에 여러 차례 참가했던 한 기업인은 “공식 행사 후에도 정부 간, 기업 간 미팅을 할 수도 있고 별도로 만나 친분을 다질 수도 있지만 경주는 컨벤션시설이 많지 않다”며 “문화 행사 등 교류를 활성화할 콘텐츠 마련 등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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