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과 노동위원회의 기능 보강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이 만들 수 있는 현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 노동위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노동위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노란봉투법을 현장에 빨리 안착하게 할 수 있다는 게 김 위원장의 판단이다.
김 위원장은 19일 서울 중구 T타워에 있는 중노위 서울사무소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이미 노동위 사건 중 30~40%는 하청 업체와 관련 됐다”며 “(교섭의 전제 조건인) 사용자성 판정은 노동위에서 주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노동 분쟁은 노동위에서 빠르게 해결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이같이 말했다. 노동위는 노동 분쟁을 판정하고 조정하는 준사법적 기관이다.
노란봉투법은 이전 법 체계로 인정되지 않던 원청 사측과 하청 노동조합의 교섭을 가능하게 한다. 이 때문에 원청과 하청 노조가 교섭 대상인지를 두고 법적 다툼까지 벌일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교섭 대상인지를 판정하는 원청의 기준(사용자성)이 모호한데다 원청이 지는 교섭 부담이 크게 늘기 때문이다. 법원과 함께 사용자성 판단을 하고 있는 노동위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줄곧 학계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노동위는 노동 분쟁에서 역할을 해왔다. 작년 노동위의 사건처리 기간은 평균 47일, 노동위 상급인 중노위 재심을 포함한 사건처리 기간은 평균 130일이다. 반면 법원은 1심까지 약 460일, 3심까지 약 1100일 걸렸다. 중노위 재심까지 걸린 기간이 법원 3심 보다 약 8배 빠른 것이다. 게다가 중노위 판정은 법원에서 유지되는 비율이 약 90%에 이를 정도로 법원과 차이가 없다. 김 위원장은 “얼마 전 노동위 일선 과장들과 노란봉투법에 관해 논의했는데, 법 시행 후 사건이 최소 두 배 넘게 늘 것이라고 우려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위는 한정된 인력으로 급증하는 사건을 처리하는 게 버거운 상태란 지적이다. 지난해 노동위 사건은 약 2만 4000건으로 2021년과 비교하면 36%나 뛰었다. 같은 기간 조사관 1인당 사건도 비슷하게 늘었다. 노란봉투법 시행 후 노동위가 현재와 같은 판정 능력과 속도를 갖추려면 인력 보강 등 기능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직장 내 괴롭힘처럼 새로운 유형의 갈등이 늘면서 해마다 사건이 10% 이상 증가하고 있다”며 “임금,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 결정에 국한되던, 교섭 범위도 이미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에는 해고, 구조조정과 같은 사업 경영상의 결정까지 노사 교섭과 노조의 파업 범위 안에 포함된다.
고용부는 노란봉투법 시행 준비 기간인 6개월 동안 교섭 절차 등 법 시행 후 혼란을 줄일 수 있는 지침을 만들 방침이다. 하지만 경영계와 노동학계에서는 지침 외 교섭 절차에 관한 보완 입법까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노란봉투법 시행 과정에서 고용부와 국회가 노동위에 어떤 역할을 맡기고 얼마나 기능을 강화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원·하청 격차를 줄이려는 노란봉투법 취지에 공감한다”며 “노사가 법적 다툼이란 최악의 갈등을 피하려면, 노동위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 노란봉투법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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