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간)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청구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리 측은 그동안 동맹 현대화 및 이와 연계된 기술 협력, 그리고 통상 등의 의제에 초점을 맞춰 회담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 견제나 추가 대미 투자 등 부담스러운 요구 사항을 건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미국 워싱턴DC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기내간담회를 갖고 "정상회담 자리에서 갑자기 새로 나오는 의제는 많지 않고, 주요 의제는 사전에 실무선에서 구체적으로 협의한다"며 "짐작하는 대로 안보 문제나 국방비 문제, 관세협상 문제 등이 얘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보 의제인 ‘동맹 현대화’와 관련해 "(주한미군) 유연화에 대한 요구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로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대신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 등의 논의는 우리로서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동맹 현대화’, 각각 다른 두 그림
동맹 현대화는 지난 수십 년간 군사안보 위주로 출발해 이후 경제안보까지 아우르게 된 한미 동맹을 변화된 세계 질서에 맞춰 현대화한다는 개념이다.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한미 양측이 모두 동의하는 바지만, 문제는 초점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동맹의 세 번째 축으로 ‘기술 협력’을 꼽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원자력, 조선, 인공지능(AI), 퀀텀, 바이오 등을 망라하는 기술동맹의 차원으로 한미동맹을 확대하고, 깊이 있게 만들고, 그래서 미래형 포괄적 동맹으로 나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반면 미국은 중국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만큼 이에 맞춘 동맹 현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에 요구해 온 사안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국방비 및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다. 앞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도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까지 국방비를 올리기로 미국과 합의한 바 있다.
미국이 중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한국이 중국 견제에도 동참할 것을 원하는 분위기다. 지난 22일 조현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외교장관 회담 후 국무부가 내놓은 보도자료에서도 이러한 기류가 드러난다. 미 국무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억지력을 강화하고 공동의 부담 분담을 확대해 미국 제조업 활성화에 기여하고 무역 관계의 공정성·호혜성을 회복하는 미래 지향적 의제를 중심으로 한미 동맹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견제와 자국 제조업 활성화 및 무역 적자 해소라는 자국의 목표에 맞게 한미 동맹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예를 들어 ‘중국과 대만 유사시 미국의 개입에 동참해달라’는 요구가 난감할 수밖에 없다. 대만 유사시를 상정하고 주한미군을 재배치한다거나 감축하는 등의 방안 역시 대북 억제력을 훼손할 수 있다. 게다가 지난 2006년 맺어진 한미 간 전략적 유연성 합의문에는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 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 입장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가 양안(중국-대만) 관계에 개입할 여지는 차단한다는 취지다. 다만 주한미군을 조정하는 대신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추가배치하는 등의 대안에 대해서는 협상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미 투자 펀드·비관세 장벽 등 세부 논의
정상회담에서는 앞서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 세부 조율도 이뤄질 전망이다. 우리 측은 상호관세 및 자동차 품목관세를 인하 (25%→15%)로 를 약속받고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수입을 결정한 바 있다. 대미 투자는 1500억 달러 규모의 마스가(MASGA) 프로젝트와 20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이차전지·원전·바이오 등 투자 펀드로 구성돼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투자 펀드의 구체적인 설계 방식과 이익 배분 구조 등이 협의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는 대미 투자 3500억 달러 대부분이 대출과 대출 보증의 형태라고 설명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일본·유럽연합(EU)의 대미 투자는 "미국이 갚을 필요가 없는 선물"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미 이견이 드러난 바 있다.
농산물 등 비관세 장벽과 관련해 미국 측이 추가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는 쌀·소고기 시장 개방 대신 사과 등 농산물에 대한 검역 절차 등을 조정하기로 했는데 이와 관련한 세부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상회담에서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도 다뤄질 예정이다. 우리 정부는 협정 개정을 통한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역량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은 미국 동의를 얻어야 20% 미만으로 우라늄 농축이 가능하다. 핵연료 재처리는 핵무기 전용이 불가능한 파이로프로세싱(재활용 기술)만 허용되고 있다. 앞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정상회담 계기에 (원자력협정) 진전을 만들어보겠다는 입장 하에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북한 문제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그러나 한미 신정부가 모두 북한과의 관계 회복을 원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들이밀면 대화 시작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군축 협상 등 ‘스몰딜’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논의를 할지, 북한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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