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북 유화책이 이어지는 반면 북측의 반응이 미미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미 정부의 대화 재개 의지는 확고하지만, 자칫하면 과거의 ‘퍼주기’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6일 군 당국에 따르면 군은 전날 오후 고정식 대북 확성기 20여 개를 모두 철거했다. 군은 남북 간 긴장 완화를 위해 지난 4일부터 대북 확성기 철거에 나선 바 있다. 철거된 장비는 관련 부대 내에 보관한다. 북한은 아직 대남 확성기와 관련해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5일 판문점에서 북한 주민 시신을 인도할 예정이라는 통일부의 통지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지난 6월 인천 강화군에서 해당 시신을 발견해 임시 안치해왔다.
북한의 반응이 앞으로도 미약할 경우 향후 우리 정부의 남북대화 재개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응답 없는 북한을 향해 과도한 선물 공세를 펼치는 모양새라는 내부 비판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의힘 소속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대북확성기 철거가 아닌 유지·관리를 택해야 한다"며 “북한의 향후 대응방향에 대해 적절히 대응할 최적의 수단을 스스로 없애는 누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미연합훈련 조정에 대해서도 이미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이호령 책임연구위원·전경주 한반도안보연구실장은 6일 보고서를 통해 "한미연합훈련 조정은 한국 정부에 대한 미 정부·주한미군의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며 "특히 대북 관여를 위한 국방 분야에서 일방적 양보는 관여의 가치를 낮출 뿐 아니라, 우리의 협상력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달로 예정된 한미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조정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건의할 생각이라고 지난달 31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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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앞서 민간 단체에 대북전단 살포 중지를 요청했으며, 국정원은 52년 만에 대북 라디오·TV 방송을 중단했다. 정부 차원에서 북한 개별관광 허용도 검토 중이다. 다만 이러한 유화책에 대해 기대한 만큼의 북측 반응이 없다면 과거의 ‘퍼주기’ 논란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남북 대화 재개의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다시 불러오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선물 공세’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 북한은 지난 2018·2019년 싱가포르와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북미 회담이 실패로 돌아간 경험, 이후로 핵·미사일 능력을 한층 고도화했다는 자신감 및 러시아와의 경제·군사적 밀착 등으로 인해 남북·북미 대화의 필요성이 시급하지 않은 상태다. 대화 재개의 의지가 확고한 현재의 한미 정부로서는 북한의 반응을 기대하며 선제 조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잇따라 유화적인 발언을 내놓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대화에 열려 있다”고 수 차례 밝혀왔고 북한의 초대형 관광 프로젝트인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역시 이미 전례가 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2018년 6월에는 "북한과의 협상 중에는 이런 훈련이 부적절하고 도발적일 수 있다"며 한미연합훈련 중단 계획을 밝혔고, 실제로 그 해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 중단된 바 있다.
현재로서는 향후 북한의 행보를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한 통일부 당국자는 “과거를 돌아보면 북한이 냉랭하다가 어느 순간 돌변한 적도, 혹은 서서히 빗장을 연 적도 있었다”며 “내부적인 필요에 따라 갑자기 대화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런 만큼 당분간 시간을 들여 일관적인 메시지를 발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 이후 20년 만에 통일부 장관으로 복귀한 정동영 장관도 지난달 28일 "남북 관계와 협력이 일관되게 이어졌다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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