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이하 현지 시간) 러시아 동부 캄차카반도 인근 오호츠크해에서 규모 8.8의 강진이 발생해 진앙과 가까운 러시아·일본·미국 등에 최대 3m 높이의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다. 20세기 들어 여섯 번째로 강력한 지진으로 관측된 가운데 러시아에 수십조 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힐 것으로 추산된다. 진앙과 거리가 먼 중국과 대만도 경계 태세에 돌입한 가운데 우리나라에는 심각한 영향이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미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진은 이날 한국 시각 오전 8시 24분께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 남동쪽으로 133㎞ 떨어진 북태평양 해상에서 발생했다. USGS는 처음 규모를 8.0으로 발표했다가 8.6, 8.7을 거쳐 최종 8.8로 상향 조정했으며 규모 6.9와 6.3의 강한 여진도 이어졌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는 이번 지진에 대해 “1952년 이후 캄차카 지역을 강타한 가장 강력한 지진”이라며 “최대 한 달간 여진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캄차카반도는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조산대에 위치해 있어 지각 활동이 매우 활발한 지역이다. 이달 20일 이후 이날까지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일곱 차례 이상 발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USGS 기록을 인용해 20세기 들어 여섯 번째로 큰 규모라고 전했다. 가장 강력한 지진은 1960년 칠레 발디비아 해안에서 발생한 규모 9.5 지진이며 이번 지진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규모 9.1) 이후 가장 강력하다. 동일본 대지진은 이번 지진보다 약 2.8배 강했으며 당시 15m 쓰나미가 내륙까지 밀려들어 322㎞ 해안을 침수시키는 한편 1만 5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3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NYT는 이날 지진이 역대 강진과 맞먹는 만큼 과거와 마찬가지로 수백억 달러(수십조 원) 규모의 경제적 피해가 날 것으로 추산했다. USGS는 “과거에도 이 정도 수준의 경보가 발령된 지진은 국가 또는 국제적 차원의 대응을 요구했다”며 “광범위한 피해가 예상되며 재난이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캄차카 당국은 지진 직후 일부 지역에서 3~4m 높이의 쓰나미가 항구 도시를 덮쳤다고 밝혔다. 러시아 북쿠릴열도 전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됐으며 타스통신이 공개한 영상에서는 파도가 들이닥쳐 일부 건물이 지붕만 보이는 모습, 건물 사이사이로 물이 흐르며 컨테이너와 대형 잔해물이 쓸려가는 장면 등이 포착됐다. 현지 구조 당국에 따르면 주민 수천 명이 고지대로 대피했으며 사상자는 없으나 2·3차 쓰나미 가능성이 예고됐다.
일본 기상청은 지진 발생 직후 쓰나미 주의보를 발령했다가 오전 9시 40분 규모 상향 조정과 함께 경보로 격상했다. 예상 쓰나미 높이도 초기 1m에서 최대 3m로 높였다.
홋카이도부터 와카야마현까지 태평양 연안에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고 이와테현에서는 1.3m, 홋카이도에서는 60㎝, 미야기·후쿠시마·아오모리·이바라키현 등에서는 50㎝의 쓰나미가 관측됐다. 기요모토 신지 일본 기상청 쓰나미대책기획관은 “쓰나미는 하루 이상 지속될 수 있다”며 “만조와 겹치면 수위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어 경보 해제 전까지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말라”고 당부했다. 산업계도 공장을 멈추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닛산자동차는 요코스카·요코하마·이와키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미쓰비시자동차도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 미즈시마 공장 가동을 멈췄다. 세븐일레븐은 가맹점주의 자율 판단에 맡겨 약 260개 점포가, 패밀리마트는 271개, 로손은 266개 점포가 일시 휴업했다. 후쿠시마 제1 원전 근로자 전원도 안전지대로 대피했으며 오염수 해양 방류도 중단됐다. 도쿄전력은 “이상 징후는 없으나 안전을 위해 전원 대피시켰다”고 밝혔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에서 열린 긴급 대책 회의에서 “피해 상황을 최대한 빨리 파악하고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히 협력하는 등 피해 방지에 임할 것을 지시했다”며 “현재 인적·물적 피해가 확인되고 있다는 보고가 접수되고 있으며 정부는 대응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진의 여파는 태평양 전역으로 확산됐다. 미국 하와이·알래스카·오리건·캘리포니아 등 서부 전역에 쓰나미 경보와 주의보가 내려졌다.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최대 3m 파도가 북부 섬으로 올 수 있다”며 주민들에게 고지대 대피를 지시했다. CNN은 하와이 마우이섬 북중부 해안 카훌루이에서 1.5m 높이의 쓰나미가 관측됐다고 보도했다. 필리핀과 태평양 괌도 쓰나미 주의보를 발령했고 중국 자연자원부는 상하이와 저우산 등 동부 연안에 해일 황색 경보를, 대만은 타이베이와 타이둥 등 남동부 해안에 최대 1m 높이의 파도 예보와 주민 대피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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