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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주 "학벌·스펙 안봐…'열린 채용'이 R&D 혁신 견인"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20~30년 전부터 인성·열정보고 선발

매일 엔지니어 등 30여명과 의견공유

기술에 영감 더하면 '온리 원' 혁신

연구원 600여명, 특허 3300개 성과

리더, 5년 앞서 판 바꿀 동력 만들어야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혁신은 학력이나 스펙보다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미국의 인공지능(AI) 데이터 기업인 팰런티어테크놀로지스가 고등학교 졸업자들을 뽑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실험을 한다는데 주성은 20~30년 전부터 인성과 열정 등만 보고 신입 사원을 선발했죠. 학력·전공·경력·성별 등 기존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열린 채용’을 통해 연구개발(R&D) 엔지니어 등 인재로 키워왔습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1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 시대에도 여전히 학벌 위주 문화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너무나 크다”며 “학교에서는 자기만의 논리와 철학을 길러주고 기업에서는 신입 직원을 뽑아 기술자 등 전문가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주성은 공대나 석박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인문계고와 상업계고·공업계고·전문대를 가리지 않고 선발해 ‘온리 원(Only 1) 혁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연구진으로 성장시킨다”며 “혁신은 학력·경력보다 현장의 기술에 영감을 더해서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황 회장은 매일 오전 7시 30분 용인 R&D센터에서 엔지니어 등 임직원들과 돌아가며 공유의 시간을 갖는다. 파트별로 돌아가며 늘 바뀌는 30~40명의 실무 담당자 중에는 고교와 전문대 출신도 상당수다. 황 회장은 이들로부터 공정 문제와 장비 혁신, 실험 결과 등에 관한 발표를 듣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R&D, 생산·품질, 영업, 기획 등 모든 부서의 상황을 공유하며 협업의 토대를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낸다. 황 회장은 “30여 년간 매일 아침 몇 시간씩 하는데 보고받고 감시하는 회의가 아니라 3~5년 차 또는 신입 사원한테 내용을 듣고 표준화와 협업을 위한 공유의 시간을 갖는 자리”라며 “책에 안 나오는 논리와 철학 방법을 알려주고 제품 설계부터 테스트, 고객 대응까지 기록해 암묵지를 공유 자산으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른 사람이 안 하는 것과 지도에 없는 것을 하도록 목표를 만들어주고 혹시 안 해도 되는 고생만 하는지, 해야 될 일을 제대로 하는지 구분해 기준을 수립하고 올바른 방향 설정을 하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R&D 인력 비율이 70% 가까이 되는 주성이 세계 최초 기술 27개와 특허 3300여 개를 갖고 있는 혁신 기업이 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황 회장은 ‘지식에다가 현장에서 몸으로 터득한 감각인 오감(五感)을 더하면 기술이 되고 다시 기술에 영감(靈感)을 더하면 비로소 혁신이 이뤄진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만큼 학력이나 스펙에 대한 환상을 전혀 갖지 않고 인재를 키우는 데 주력한다. 주성이 ‘인재사관학교’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면접을 볼 때 엉뚱한 얘기나 그때그때 다른 질문을 하지만 인성·열정·인내심·생활관만 보고 사람을 뽑죠. 올바른 의식을 정립하면 저절로 자기 계발과 새로운 가치 창출이 가능합니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좋은 대학을 나와도 의식이 잘못되면 소용없어요. 그런데 대체로 기업에서는 서류 전형에서 스펙을 많이 보니까 능력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저희는 혁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니까 경력자가 필요없습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지식에다가 현장에서 몸으로 터득한 감각인 오감(五感)을 더하면 기술이 되고 다시 기술에 영감(靈感)을 더하면 비로소 혁신이 이뤄진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사진 제공=주성엔지니어링


황 회장이 일찌감치 능력은 학벌과 비례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것처럼 AI 빅데이터 분석 기업으로 각광받는 팰런티어의 알렉산더 캐드먼 카프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능력주의 펠로십’을 통해 고교 졸업생 22명을 선발해 정규직 전환 실험을 하고 있다. 고교 졸업생들은 1개월간 서양 문명과 미국 역사, 사회운동 등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에 참여한 뒤 3개월 동안 병원, 보험사, 방산 업체, 정부 기관 등과 접촉한다. 이 기간 월 5400달러(약 790만 원)를 받는데 우수 수료자들은 정규직의 기회를 잡게 된다. 카프 CEO는 철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법학석사와 독일 괴테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대졸자 채용은 그저 진부한 말만 해왔던 사람들을 채용한다는 것을 뜻한다”며 ‘대학 무용론’을 설파한다.

황 회장은 팰런티어의 실험과 관련해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혁신가가 되는 게 결코 아니다”라며 “오히려 대학이나 전공의 틀에 갇히면 고정관념이 생겨 혁신을 가로막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내 대학과 초중고에서는 여전히 과거 모방경제에서나 통할 만한 지식 쌓기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즘 AI 시대에 교육 현장에서 지식만 습득해서는 의미가 없고 차별화 능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기업들도 차별화된 직원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고 남이 키워 놓은 인재를 빼가려 하는데 안타까운 일이죠. 경력자 위주로 직원을 뽑는 것은 혁신을 하지 않고 모방·관리하겠다는 겁니다. 국가적으로도 프로 스포츠처럼 기술자를 육성·보호하고 가치를 증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그는 “주성의 연구원은 600여 명이지만 경쟁사들은 몇 만 명의 임직원을 보유하고 있다”며 “약자가 강자를 이기고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리더가 5년가량 앞서 움직이고 판을 바꾸는 혁신의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성이 실리콘 웨이퍼(기판) 위에 더 많은 칩을 집적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온 반도체 역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3-5족 화합물 반도체를 유리기판 위에서도 양산할 수 있는 ALG 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도 생존을 위해 혁신을 꾀한 결과다.

초대 벤처기업협회장과 초대 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뒤 현재 한국발명진흥회장을 맡고 있는 황 회장은 “저성장 고착화와 중국의 급부상, 자국우선주의 심화와 공급망 분리 상황에서 우리 경제는 도약이냐 추락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며 “혁신 인재를 키워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함께 잘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철주 회장의 ‘혁신 10계명’



1. 고정관념을 비우고 역발상을 통해 새로운 기준을 세워라.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관점으로 시작해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판을 바꾸는 혁신을 해야 승리할 수 있다.

2. CEO는 5년 앞서 움직여라. 업무 목표를 위한 방향 설정인 기준을 잘 잡고 직원들이 고생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한 표준을 잘 세우고 목표에 더 빨리 도달하고 성장을 위한 시스템을 잘 정립해야 한다.

3. 리더는 철학과 목표를 만들어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무엇을 달성해야 하는지 전사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관건은 능력이 아닌 목표의 차이에 있다. 0.1%의 차별화와 0.1초의 빠른 속도가 성패를 좌우한다.

4. 혁신은 절박함과 절실함에서 나온다. 진짜 혁신은 5~10년이나 걸린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1%,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않는 1%를 만들기 위해 몰입하고 공유를 통해 조직에서 신뢰의 문화를 쌓아야 한다.

5. CEO와 리더가 혁신을 제시하는 게 1%라면 구성원들의 신뢰와 협업이 99%이다. 이 둘이 결합해 100%가 될 때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신뢰가 없는 혁신은 오래가지 못한다. 자신의 능력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협력과 일의 결과를 공유하는 협업의 개념이 다른데, 협업이 혁신의 속도를 높일 수 있어 더 중요하다.

6. 지식은 과거의 것이다. 지식과 경험의 항아리를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울 공간이 생긴다. 기술은 지식에 오감을 더하는 것이고 혁신은 기술에 영감을 더하는 것이다. CEO는 혼을 담아서 기술자를 육성해야 한다. 혁신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없어진다.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끊임없이 경쟁자가 없는 기술과 제품으로 승부해야 한다.

7. 철학이 없는 기술은 방향을 잃고, 시스템이 없는 철학은 사라진다. 혁신은 이 둘이 만날 때 꽃처럼 피어난다. 이제는 국산화 같은 ‘패스트 팔로어’에서 벗어나 ‘퍼스트 무버’로 나아가야 한다.

8. 리더는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고생은 하지 않도록 명확히 구분해줘야 한다. 우리 노동생산성이 미국의 절반에 불과한 까닭은 안해도 될 고생을 하기 때문이다.

9.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사업가가 아니라 다른 이를 행복하게 만들면서 회사를 키워가는 기업가가 돼야 한다. 리더십은 모범, 통찰력, 용기에서 나온다. 다른 사람이 시도하지 않은 일을 실행하는 것이 기업가의 존재 이유다.

10. 이밖에 회사의 투자 계획, 프로젝트 진척률, 회계 장부, 원가구조, 연봉·성과급 산정 같은 경영 정보를 직원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해 신뢰기반을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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