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11년 만에 폐지됐다. 22일 폐지 직후 단말 지원금 상한이 사라지면서 ‘성지’로 불리는 일부 매장을 중심으로 파격적인 할인 경쟁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동통신 전문 조사기관 컨슈머인사이트는 가입자 3분의 1이 번호이동 의향을 가졌다는 조사결과도 발표했다.
다만 최근 해킹 사고로 가입자를 크게 잃은 SK텔레콤이 어느 정도 회복하고 나면 다시 통신시장 경쟁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장기적으로 단통법 폐지만으로는 통신시장 경쟁을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문형남 숙명여대 글로벌융합대학 학장 겸 글로벌융합학부 교수는 27일 단통법 폐지에 대해 “유통점이 자율적으로 보조금을 책정할 수 있게 되면서 고가 스마트폰에 대한 출혈 경쟁이 예상된다”면서도 “단기적으로는 소비자 혜택이 증가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이동통신사들의 마케팅 비용 부담과 요금 인상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내다봤다.
문 교수는 그러면서 “알뜰폰(MVNO) 시장 활성화와 제4이통사 유치도 잘 추진해야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고 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도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데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통신시장 자체도 이미 포화라서 경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이 해킹 사고로 잃은 가입자들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나면 경쟁 동력이 다시 사라져 단통법 폐지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통법이 폐지된 이번주에도 일부 매장에서만 신제품 ‘갤럭시Z7’ 시리즈에 대해 파격적 할인을 제공하는 등 통신 3사 간 경쟁이 전체 가입자 대상 혜택 강화보다는 비교적 적은 마케팅 비용으로 ‘환승족(族)’을 집중 공략하는 국지전 양상을 보였다.
전문가들 의견처럼 단통법 폐지 효과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근거는 크게 넷이다. 우선 스마트폰 제조사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갤럭시S3 보조금 대란’이 일어났던 13년 전과 달리 스마트폰 제조사가 크게 줄어 삼성전자와 애플이 시장을 양분하게 됐고 이에 가격 경쟁도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기기값이 점점 올라 통신사 할인만으로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부담이 커서 기기 교체 수요를 부추기는 데 한계가 있다.
5세대 이동통신(5G) 시장도 포화 상태다. 3사의 5G 보급률, 즉 가입자 중 5G 요금제 가입자 비중은 70%대다. 10명 중 7명 이상이 이미 5G 요금제에 가입했기 때문에 번호이동 외 신규가입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통법 시행 전 3G에서 롱텀에볼루션(LTE·4G)으로의 이동이 활발히 이뤄졌던 상황과 다르다. 2030년대 6G나 그전 28GHz 5G 서비스를 발굴해 가입자들이 새로운 요금제에 가입할 유인을 만들어야 하지만 현재 3사는 사업성 문제로 관련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상태다. 실제로 현재 5G로도 동영상 시청, 웹 서핑, 게임 등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어 이보다 더 빠른 차세대 통신이 특장점을 갖기 어려운 실정이다.
경쟁력 있는 알뜰폰이나 제4이통사 같은 새로운 시장 경쟁자가 부재하다는 점도 통신시장 점유율을 고착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3사는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행이 굳어진 데다 인공지능(AI) 신사업 투자로 마케팅 재원을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와 차별화해 혁신 서비스로 승부보는 시장의 ‘메기’, 이른바 독행기업이 등장하지 않으면 단통법 폐지라는 경쟁수단도 제대로 쓰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단통법 폐지는 알뜰폰 입장에서는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 우려가 있다. 알뜰폰은 이미 가입자가 단말기는 별도로 구하고 유심(USIM) 요금제만 저렴하게 가입해서 쓰도록 하는 사업모델을 내세워 단통법 폐지를 통한 단말기 지원금 경쟁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제4이통사 유치 역시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스테이지엑스 사업자 선정을 취소한 후 계속해서 차질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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