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으로 약 5년간 형사재판을 받아온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이 세 차례에 걸쳐 일관되게 내린 결론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형사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이제 관심은 합병으로 인해 손해를 봤다며 주주들이 이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손해배상 소송으로 옮겨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형사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되면서 민사상 책임을 입증하기가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이달 17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 14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며 원심의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검찰이 2020년 9월 이 회장 등을 불구속 기소한 이후 약 4년 10개월 만에 나온 최종 결론이다.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한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의 분식회계에 가담한 혐의도 받았다. 앞서 1심과 2심은 모두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합병의 주된 목적이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 및 승계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총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원심은 합병비율을 조작이라 볼 수 없고, 합병 관련 허위정보 유포나 삼성물산 주식의 부정 거래 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본 원심 판단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고 죄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도 없다”며 원심 판단을 수긍했다.
이 회장의 형사재판이 무죄로 마무리되면서 합병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제기된 민사 손해배상 소송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재판장 남인수)는 국민연금공단이 이 회장과 삼성 관계자를 상대로 제기한 5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 첫 변론을 오는 8월28일에 연다. 연금공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지난해 9월 소송을 제기했다. 당초 지난달 26일 첫 변론이 예정됐지만 기일이 변경됐다.
소액주주 32명이 2020년에 제기한 또 다른 소송의 경우 지난달 19일 2차 변론이 진행됐다. 이 소송은 지난해 2월 첫 변론 이후 이 회장의 형사재판 결과를 기다리며 잠시 중단된 상태였다. 현재는 추가 서면 공방 등을 이유로 기일이 다시 추후 지정된 상황이지만, 관련 형사 사건이 완전히 종료된 만큼 재판도 신속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재판 진행 속도와는 별개로 손해배상 청구 측이 승소하기 위한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형사사건에서 무죄가 확정됐다는 이유만으로 민사상 책임까지 완전히 면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불법행위를 입증하기 위한 별도의 자료를 제시해야 하는 만큼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형사상 유죄 판결은 민사 책임을 입증하는 데 있어 강력한 증거가 되지만, 무죄가 확정된 순간부터는 책임 소재를 뒷받침할 다른 증거를 제출해야 해 입증이 매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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