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력망 구축을 위한 별도의 조직을 한국전력공사 산하에 건설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은 전력망 구축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데 비해 실제 건설 실적은 이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설 인력과 인접 주민 지원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데다 지역 주민의 민원은 더 늘어 지방자치단체와 한전이 갈등을 빚는 탓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2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1회 에너지전략포럼’ 기조연설에서 “전력망 구축이 에너지 산업에서 가장 큰 도전 과제”라며 “한전을 중심으로 송배전망 건설 역량을 높이고 부족하다면 정부가 도울 수 있는 방향을 검토해보겠다”고 강조했다. 전력망 건설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이야기다. 최 차관은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트렌드에 맞춰 전력계통 운영 체계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며 “인공지능(AI)과 같은 신기술을 적극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최 차관은 2010년대 들어 발전설비 증가세에 비해 전력망 구축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강원도 해안 지역의 잉여전력을 수도권으로 옮기기 위한 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송전(HVDC) 건설 사업은 당초 계획보다 82개월 넘게 지연됐다. 2012년 준공을 목표했던 345kV 규모의 북당진~신탕정 송전선은 무려 13년을 지체해 올해 4월이 돼서야 겨우 전력 공급을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철탑이 들어서는 곳마다 지역 주민과 협의를 해야 하는데 보통 일이 아니다”라며 “전자파 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번 반대 여론이 형성되면 뒤집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공사의 난도는 높은데 전력망 수요는 전례없이 증가하고 있다. 한전이 2021년 수립한 제9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 따르면 2034년 송전선로 길이는 4만 8075c-㎞(서킷킬로미터)였다. 그런데 올해 확정한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서는 2038년 필요한 송전선 길이가 6만 1183c-㎞로 4년 만에 27.3% 늘었다. 이에 소요되는 전력망 설비 구축 비용은 29조 3000억 원에서 72조 8000억 원으로 2.5배 가까이 뛰었다.
최 차관은 전력망 수요가 급증하는 이유로 전력 생산 방식의 변화와 전기화 추세를 꼽았다. 석탄·석유·액화천연가스(LNG)·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전통적인 전원은 증기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교류 전원이다. 반면 갈수록 총설비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 태양광발전은 햇빛만 있으면 에너지가 생산되는 직류 방식이다. 이 때문에 기성의 교류 전력망에 연결하기 위해 태양광 발전소에는 직류를 교류로 전환하는 인버터가 부착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교류 중심의 전력망에 직류 설비가 뒤섞이는 것이다.
특정 장소에서 대규모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집중식 발전 방식이 곳곳에서 생산해 배분하는 분산식 발전으로 전환된다는 점도 전력망 투자 수요를 가중한다. 실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11차 송변전 설비 계획에서 소요되는 비용 72조 8000억 원 중 70%에 가까운 50조 7000억 원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발전소 지역 편중에 따라 부가된 비용이다.
전기화 역시 전력망 수요를 높이는 요인이다. 전기화는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바뀌거나 석탄을 사용하던 제철 고로를 전기로로 바꾸는 등 기존에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던 산업·경제활동이 전기 기반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 관계자는 “이때까지는 통상 화석연료 소비량의 3분의 1은 발전용, 3분의 1은 수송용, 3분의 1은 난방용이었다”며 “전기차가 대중화되면 화석연료 총수요는 줄어들면서 동시에 발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시된 새 정부의 에너지고속도로 공약 달성을 위해 최 차관은 충분한 지원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차관은 “9월부터 전력망특별법 시행령이 공식 시행된다”며 “송배전 설비가 있는 지역 주민에 대한 보상이 강화돼 주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산업부가 입법예고한 전력망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발전사업 시행자는 송전설비 주변법에 규정된 지역별 지원금에 송변전설비 관할 시군구에 추가 지원할 수 있다. 또 전력망 설비로부터 300m 이내 근접한 지역이거나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과 345kV 송변전 설비가 2개 이상 밀접한 지역에도 기존보다 더 많은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
이어 최 차관은 전력망 자체를 고도화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최 차관은 “직류형·분산형 전원이 늘어나는 변화에 맞춰 전력계통 운영 체계도 고도화해야 한다”며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AI 기술을 활용하면 스마트한 계통 운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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