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지난해 4분기부터 금값이 급등했다. 안전자산에 투자하고 싶은데 금이 부담스러운 투자자라면 은과 구리(동)도 주목할 만한 투자 자산이다. 은은 금(귀금속)과 구리(산업재)의 속성을 반씩 나눠가진 자산으로 최근 금보다 상승 폭이 크지 않았던 만큼 여전히 상승 여력이 남아 있다는 평가다. 구리 가격은 금리 인하 국면과 더불어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늘면서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16일 뉴욕상품거래소에 따르면 국제 은 가격은 연초 1트로이온스당 29.24달러에서 전날 기준 32.79달러로 거래를 마치며 올해 들어 12.14% 올랐다. 10%가 넘게 올랐지만 금 가격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아쉬운 상승률이다.
은과 금의 가격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인다. 그럼에도 상승률이 다른 것은 사용처가 다르기 때문이다. 금과 은은 모두 귀금속으로 분류되지만 산업용 비중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금은 약 10%가 산업 관련 분야에 쓰인다. 이외에 90%는 보석 제작과 투자 목적으로 보관된다. 반면 은은 약 60%가 산업에 투입된다. 전자제품, 태양광 패널 등에 쓰인다. 나머지 30%는 보석류에 가공된다. 은의 이 같은 사용처 때문에 절반은 금의 속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이유로 통상 경기 확장기에 금보다 은의 가격이 더 오르는 반면 경기 위축기에는 금의 가격이 은의 가격보다 더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들이 은을 주목할 만한 자산으로 보는 이유는 경기 불확실성에 대처하면서도 금리 인하의 수혜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투자자산이기 때문이다. 미국 통화 당국의 금리 인하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큰 틀에서 통화정책의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금리가 내려가고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기가 살아나면 은의 가격이 더욱 상승할 수 있다.
뉴욕상품거래소에 따르면 구리 선물은 올해 1파운드당 4.0265달러에서 전날 기준 4.6835달러를 기록하며 16.32% 올랐지만 상승 여력은 여전하다. 구리는 전기·건설·자동차 등 대부분 산업에 사용되는 금속으로 경제 선행지표 역할을 해 ‘닥터 쿠퍼’로도 불린다. 구리 가격 전망이 긍정적인 이유는 전력 수요 확대다. AI 산업이 급성장하게 되면서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전력이 필요해졌다. 구리는 전기전도체의 원료로 쓰여 사실상 AI 산업 성장의 동력이 됐다. 중국의 경기 부양책과 재생에너지 전환도 구리 수요 확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재생에너지 시스템은 통상 화석연료 및 원자력과 비교해 구리를 더 많이 사용한다. 구리 생산 업체인 글렌코어는 증가하는 수요를 맞추려면 2050년까지 전 세계 구리 공급량이 매년 약 100만 톤씩 증가해야 한다고 추정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AI 데이터센터 열풍으로 전기 소비가 늘어났고 장기적으로 구리의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금 가격이 하락한다면 금을 매수하는 동시에 구리를 사는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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