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선불유심을 대가를 받고 개통한 경우, 유죄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유심이 실제로 타인에게 사용될 가능성을 알면서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취지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씨 사건에서 2심의 무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0년 12월, 지인으로부터 “선불유심을 대신 개통해주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자신의 신분증과 가입서류를 제공해 총 9개의 선불유심을 개통하게 했다. 이후 이 중 일부 유심이 실제 보이스피싱 범행에 사용됐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유심이 타인에게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이를 받아들였고, 돈까지 받았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지인을 도와주려는 단순한 호의였을 수도 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를 다시 뒤집었다. 재판부는 “선불유심은 일반적으로 타인의 통신용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누구나 알 수 있고, 실제 일부 유심이 범죄에 쓰였다”며 “대가까지 받았다는 점에서 단순한 호의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피고인은 수사 초기부터 혐의를 인정하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했고, 진술이 강요된 정황도 없다”며 피고인의 진술 신빙성도 높게 평가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유심을 타인에게 제공해 통신에 사용될 가능성을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고도 개통을 받아들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2심은 이런 점을 간과하고 고의에 관한 법리를 잘못 적용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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