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부터 화제였던 미국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최근 전투 보직 여군에게 적용되는 낮은 체력시험 기준을 없애라고 명령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지시에 따라 미 육군은 전투병과 여군에게 남군과 똑같은 체력 기준을 요구하는 새 체력검정 기준을 마련했다.
이른바 ‘성 중립’을 반영한 육군체력시험(AFT)을 마련해 현행 육군전투체력시험(ACFT)을 대체하게 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작전 수행에 필요한 신체 조건을 충족하는 준비된 병력을 구축하기 위해 조치라는 게 미 육군의 설명이다.
새 규정은 올해 6월 발효하며 현역 군인에게 내년 1월 시험부터 적용된다. 이에 따라 전투에 나설 수 있는 21개 전투 보직(MOS·군사특기)의 미 여군은 남군 기준을 맞춰야만 자신의 주특기로 군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전투 보직은 보병, 특수부대, 포병, 기갑부대, 기병, 박격포병, 전투공병 등이 있다.
새 체력시험은 △3회 반복 최대 데드리프트(MDL) △릴리즈 푸시업(HRP) △스프린트-드래그-캐리(SDC) △플랭크(PLK) △2마일(약 3.2㎞) 달리기(2MR) 등 5개로, 기존 시험에서 ㎏스탠딩 파워 스로우(SPT)가 빠졌다.
미 육군 체력시험은 5개 종목 중 하나라도 최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탈락한다. 두 차례 연속 탈락한 병사는 제대해야 한다. 미 육군 현역은 연 2회, 주방위군과 예비군은 연 1회 체력시험에 응해야 한다.
이 같은 조치는 주방위군 보병 장교 출신인 헤그세스 장관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그는 일부 전투 병과에 여군이 참여하는 데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임 전부터 밝혀왔다. 최근 저서에선 여군과 남군의 역할은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견해도 드러냈다.
미 육군은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이던 2022년 공정성을 이유로 체력검정 때 여군이 넘어야 할 기준을 낮추도록 했지만 3년 여 만에 다시 여군에게 남군과 똑같은 체력을 갖추도록 변경한 것이다. 다만, 새 체력시험에서 남군 기준에는 미달했지만 여군 기준을 충족한 전투보직 여군은 비전투 보직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의 유력 매체 뉴욕타임스(NYT)는 새 체력시험으로 인해 위험한 병과에 여군을 모집하고 유지할 육군의 역량이 저해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2016년부터 미군과 교전하는 국가는 최전선에서 여군의 총알이나 포격에 맞닥뜨리기 시작했다. 미 국방부는 2016년 1월부터 미군의 모든 병과와 직책이 예외 없이 여성들에게도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미군은 앞서 2013년 여군에게도 부분적으로 전투병과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그 뒤 3년 가까이 국방부는 육·해·공군, 해병대와 특전사령부 등의 최고 지휘부, 민간 전문가들이 함께 여군의 병과 통합복무 방안을 검토한 끝에 예외 없이 모든 병과와 직책을 개방해 ‘금녀의 벽’을 완전히 허물었다. 현재 미군에 복무 중인 134만명의 현역 군인 중 여군의 비중은 약 15.6%에 이른다.
그러나 미 육군은 2012년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40년 동안 시행된 육군 신체 적합성 시험(APFT) 제도를 2018년 후반부터 단계적으로 대체한 육군 전투 적합성 시험(ACFT) 제도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ACFT는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2마일(약 3.2㎞) 달리기 등 3개 항목으로 이뤄졌다. 이 제도는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서 전투 중 부상보다 근골격계 부상에 따른 전력 누수가 심했다는 분석 결과에 따라 도입됐다.
사실 ACFT는 성별과 나이에 따른 기준을 두던 종전 시험과 달리 남녀, 나이를 불문하고 같은 기준으로 채점 방식을 변경해 지속적으로 논란이 뒤따랐다. 게다가 미 육군이 진행한 시험 결과가 진급을 비롯한 인사에 반영되면서, 남성이 높은 점수를 받고 여성이 대거 불합격해 불공정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같은 논란은 현실화 됐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따르면 불합격 비율은 남성이 10%였지만, 여성은 65%에 달했다. 특히 여성은 철봉에 매달려 두 무릎을 턱까지 끌어올리는 세부 항목에서 남성보다 심각하게 고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의회가 지난해부터 부족한 병력 자원을 확보할 방안으로 전쟁이 일어나 병력을 충원해야 할 때 대비하는 징집 대상에 여성도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성을 이유로 미 육군 여군의 체력검정 기준을 낮췄지만, 3년 만에 다시 남군과 똑같은 체력을 요구하려는 방침이 얼마나 유지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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