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암연구학회(AACR)에서 발표된 임상 1상 중간 데이터를 통해 차세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의 경쟁력을 충분히 입증했다고 봅니다. 조기 기술이전보다는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스윗 스팟(sweet spot)’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김대권(사진) 보로노이 연구부문 대표는 2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표피성장인자수용체(EGFR) 돌연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인 ‘VRN11’의 임상 성과와 기술이전 전략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스윗 스팟은 야구에서 배트, 골프에서 드라이버로 공을 칠 때 힘이 가장 효과적으로 실리는 지점이다. VRN11의 현재 성과에 만족해 조기 기술이전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최고의 가치를 평가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자체 임상을 더 진행하면서 시기를 저울질하겠다는 얘기다.
보로노이가 AACR 2025에서 처음 공개한 임상 1a상 데이터에 따르면 VRN11은 강력한 항암 효과와 함께 안전성, 뛰어난 뇌혈관 투과율을 보였다. 김 대표는 “저용량인 40㎎를 4개월 투약한 환자는 폐에 있던 종양 크기가 50% 이상 감소했다”며 “80㎎을 투약한 환자는 부신에 있던 종양 크기가 4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80㎎을 투약한 또 다른 환자의 경우 폐에 있던 종양이 38㎜에서 25㎜로 감소했고 심지어 흉수에 있던 종양은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VRN11은 기존에 EGFR 표준 처방을 1개 이상 받았지만 내성 문제로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한 결과, 2차 치료제로서 무진행생존기간(PFS)와 객관적반응률(ORR)에 대한 증거도 확보했다. 특히 약물 용량을 40㎎에서 4배나 늘린 160㎎에서도 부작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용량을 계속 늘리는 임상이 계속 진행 중이다.
보로노이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표적 단밸질과 정확하게 결합하고 그 이외 나머지 정상 단백질에 결합하지 않는 ‘선택성’ 파이프라인 개발에 경쟁력이 있다. 질병의 원인에만 결합하는 약물이라 부작용 걱정이 없는 항암제 개발에 특화된 셈이다. 김 대표는 “(타겟 항원에 대한) 선택성이 높은 약물은 낮은 부작용으로 인해 더 높은 용량으로 증량이 가능하다”며 “용량을 늘릴수록 항암 효과가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VRN11이 마우스 실험에 이어 인간과 가장 유사한 원숭이 실험에서도 뇌혈관장벽(Blood Brain Barrier·BBB) 투과율이 100% 이상이라는 데이터도 공개됐다. 김 대표는 “VRN11 40㎎을 투약한 환자의 자기공명영상(MRI)에서 뇌전이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종양(10.6㎜ 크기)이 2개월 뒤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며 “뇌전이 환자 7명의 질병관리율(DCR)이 85.7%로 임상 시작 용량인 10㎎에서부터 충분한 치료 효과가 있음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보로노이는 이번 AACR에서 VRN11 이외에도 고형암 표적치료제인 ‘VRN16’, ‘VRN19’의 전임상 결과를 발표해 주목 받았다. 경쟁 약물에서 나타나는 혈구 독성이나 피부 독성 위험을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환자들의 미충족 수요가 높고 그 만큼 시장성 확장성이 큰 고형암 표적치료제 개발에 더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대표는 “다양한 고형암 타깃에 대한 파이프라인을 자체 기술로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 3개 선도 과제가 파이프라인 선정 과정에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기존 표적치료제에서 30~40% 수준으로 빈발하는 약물 내성 돌연변이를 해결할 수 있는 차세대 약물로 아직 (경쟁사들이) 임상에 들어간 선행 약물이 없다”며 “연내 파이프라인 선정을 완료하고 임상개발을 위한 우수실험실기준(GLP) 시험에 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로노이가 가진 신약 개발 경쟁력은 어디서 나올까. 업계에서는 자체 인공지능(AI) 신약 발굴 플랫폼 ‘보로노믹스’ 와 바이오텍 중 거의 유일한 동물 실험실 보유, 신속 유연한 연구환경과 성과기반 보상 등을 꼽는다. 김 대표는 보로노이에 대해 “국내 바이오텍 중 가장 의사결정과 실험속도가 빠른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내 최대 규모 신약물질 특허도 이 같은 기반에서 나왔다”며 “우리 기술로 글로벌 수준의 기술역량을 가진 신약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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