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들은 출범 초기부터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라는 미션을 받았다. 은산 분리 원칙을 뛰어넘어 예외적으로 산업자본인 정보기술(IT) 기업에 주식 보유 특례를 허용하려면 그 정도의 명분은 필요했었다. 담보도 없고 신용도 부족해서 은행의 문턱을 넘을 수 없는 고객들 위주로 은행업을 한다면 일부 예외는 인정할 수 있다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혁신 기업들에 혁신 대신 포용이라는 숙제를 내준 게 자연스럽지는 않다. 어쨌든 이에 따라 인뱅들은 설립 이래 중저신용자 대출을 30% 이상 유지하고 있다.
포용 금융이라는 정책적 목표만을 고려하면 이 조치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기존 금융권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했던 중저신용자들이 인뱅을 통해 보다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경쟁이 정체된 은행업에 혁신으로 메기 역할을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인뱅들에 이 미션은 발목에 찬 모래주머니와 같았다. 더욱이 가계부채 총량 관리로 대출 증가율이 인위적으로 억제되면서 대출 자산이 적은 인뱅들은 건전성 관리에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소규모 인뱅들이 건전성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위험 분산이 어려워서다. 대형 은행들은 우량 고객을 포함해 다양한 신용등급의 대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어 일부 연체가 발생해도 전체적으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반면 인뱅들은 담보대출 같은 안전한 자산이 적어 부실 대출이 증가할 경우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연체율이 상승하면 이를 대비하기 위한 대손충당금을 더 많이 쌓아야 하며 규모가 작은 은행일수록 상당한 재무적 부담이 된다.
인뱅들은 대형 은행에 비해 금리 경쟁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있다. 대형 은행들은 조달 비용이 낮고, 신용도가 높은 고객들에게도 대출을 공급할 수 있어 비교적 낮은 금리로 대출을 운영할 수 있다. 반면 인뱅들은 상대적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높고 중저신용자 대출 비율까지 지켜야 해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금리 맛집 인뱅의 배신’ 운운하며 인뱅이 이자 장사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은 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문제의 핵심은 포용 금융이라는 큰 정책 목표를 인뱅들에만 짊어지게 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가장 규모가 작은 인뱅이 20배 이상 큰 대형 시중은행보다 더 많은 중저신용자 대출을 하는 기이한 결과까지 초래했다. 기존 대형 은행들은 의무에서 자유로운 반면 상대적으로 자산 규모가 작은 인뱅들은 능력 이상으로 중저신용자 대출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불균형한 구조에서는 정책 목표 달성도 어렵고 인뱅들의 건전성도 위협받게 된다.
포용 금융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라는 임무를 특정 금융업권에만 부과할 것이 아니라 기존 대형 은행들도 일정 부분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인뱅들이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어렵고 궁극적으로는 중저신용자 대출 시장 자체의 위축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의무 비율을 강제하는 방식 자체도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있는 점 역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금융기관이 시장 논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대출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중저신용자 대출 시장이 자연스럽게 성장하려면 금융기관들이 자발적으로 리스크를 감내하고 해당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단순한 목표치 부과보다는 대출 심사 모델 개선, 신용평가 고도화, 정부의 리스크 분담 기제 마련 등을 통해 금융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중저신용자 대출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쪽으로 정책이 재설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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