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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1536개 DNA 동시 조립·분석…"연구 속도 10배 높여"

[생명硏 바이오파운드리 시범시설 가보니]

100㎡ 실내에 80여대 장비 빼곡

바이오 원료 제조공정 완전 자동화

실험실에 현장 연구원은 단 2명뿐

이달 합성생물학육성법 국회 통과

5년간 1263억원 투입 본시설 구축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바이오파운드리 베타(시범) 시설에서 연구자들이 자동화 장비를 활용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윤수 기자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바이오파운드리 베타(시범) 시설에서 로봇 팔을 포함한 DNA 조립·분석 장비들이 작동하고 있다. 김윤수 기자


“유전자 코드를 바꿔서 다시 해봅시다.”

위생 가운을 입은 연구자가 컴퓨터로 유전자 코드를 새로 입력하자 100㎡(30평) 실내에 빼곡히 들어찬 80여 대의 장비들이 ‘지이잉’ 소리를 내며 작동했다. 장비 대부분은 복합기나 프린터 같은 네모진 사무기기처럼 생겨 전체적으로 바이오 실험실보다는 일반 사무실 모습에 가까워 보였다. ‘바이오뱅크’라는 장비는 입력된 유전자 코드를 실제 유전물질인 데옥시리보핵산(DNA) 조각으로 출력해 손바닥만 한 칩인 플레이트(판)에 담았다.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플레이트는 1536칸으로 구획돼 칸마다 다른 DNA 조각을 담을 수 있다고 했다. 곧이어 로봇 팔이 다가와 플레이트를 들고 분석 장비들로 가져갔다.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바이오파운드리 베타(시범) 시설은 수작업에 의존하던 DNA 조립과 분석 등 바이오 신약 개발의 핵심 과정 대부분을 로봇과 인공지능(AI)이 대신하고 있었다. 바이오 실험실이라고 했지만 당시 현장 연구원은 2명뿐이었고 사람이 스포이드로 용액을 옮기거나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는 식의 당초 생각했던 풍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생명연 합성생물학연구센터의 김하성 박사는 “바이오 분야는 장비와 소프트웨어의 공급사와 운영체제(OS)가 제각각이라서 이를 하나의 업스트리밍(배양·추출) 공정으로 통합하는 일은 쉽지 않다”며 “바이오파운드리가 이를 구현하고 연구 속도를 10배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파운드리 베타 시설은 반도체처럼 자동화 공정 도입으로 바이오 원료 제조를 효율화하는 ‘국가 바이오파운드리’ 구축을 위한 사전 연구와 기술 검증을 수행하는 인프라다.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바이오파운드리 베타(시범) 시설에서 로봇 팔이 실험용 플레이트(판)를 옮기고 있다. 김윤수 기자




DNA는 대표적 바이오 원료다. DNA는 몸속에서 다양한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다. 이 설계도에 따라 생명체의 외형이나 기능 같은 특성, 즉 표현형이 달라진다. 설계도를 바꾸는 DNA 개량 작업을 통해 미생물을 에탄올 같은 특정 물질 생산에 최적화한 세포 공장으로 만들 수 있다. 또 DNA 개량으로 신약도 개발할 수 있다. DNA의 정보를 바탕으로 바이러스를 잡는 단백질 ‘항체’를 만드는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이 대표적 예다. 이처럼 DNA를 바꾸고 그 표현형을 분석해 최적의 결과물을 찾는 개량 작업을 이곳 베타 시설이 자동화한 것이다. 향후 실제 바이오파운드리는 DNA뿐 아니라 리보핵산(RNA), 단백질, 인공 세포, 균주 등 다양한 신약·신소재용 바이오 원료를 다룰 것으로 기대된다.

DNA를 이루는 네 종류의 물질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사이토신(C)의 연결 순서, 즉 유전자 코드를 변경해 설계도를 바꿀 수 있다. 베타 시설에서는 플레이트에 담을 수 있는 최대 1536종의 DNA 연결 조합을 동시에 실험할 수 있는 셈이다. ‘AGCTA…’와 같은 특정 조합의 DNA 조각들은 플레이트 속 용액에 담겨 초소형 스포이드를 장착한 로봇 팔에 의해 옮겨지고 다른 DNA 조각 용액과 섞여 결합되거나 분리된다. 용액에 레이저를 쫴 DNA의 효소 활성, 대사 경로 같은 ‘형광 특성’을 초당 2000개 분석하고 역시 로봇 팔로 배양용 세포에 DNA를 주입해 표현형을 살펴볼 수 있다. 용액을 nℓ(나노리터·10억 분의 1ℓ) 단위로 정교하게 다루고 DNA 조각의 길이까지 측정할 수 있어 분석 정확도를 크게 높인다는 게 생명연의 설명이다.

로봇 팔을 기다리는 플레이트들. 김윤수 기자


베타 시설을 발전시킨 형태인 국가 바이오파운드리 구축 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 공동으로 올해부터 5년간 1263억 원 규모로 추진된다. 지난해 예비타당성조사 통과에 이어 이달 ‘합성생물학육성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승구 국가바이오파운드리사업단장이 선임되며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었다. 국가 바이오파운드리는 베타 시설보다 약 20배 큰 규모로 구축돼 기업들의 신약·신소재 개발을 지원할 방침이다.

다만 국가 바이오파운드리는 기업들의 공통된 공정인 업스트림만을 지원하고 후속 공정인 다운스트림(완제품 제조)과 스케일업(양산) 혁신에는 기업들의 공조가 필요하다. 이 단장은 “의약·농업·환경 등 분야별·제품별로 공정이 다르고 세포 하나만 유출돼도 개발 과정이 다 유출되는 보안 문제도 있기 때문에 후속 공정은 기업별 특화 바이오파운드리가 될 수밖에 없다”며 “국가 바이오파운드리 가동 후 민관을 연계한 산업화 전략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대전 유성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2029년까지 1263억 원 규모로 조성될 국가 바이오파운드리 시설의 상상도. 사진 제공=한국생명공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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