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힘든 한 주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전 세계 증시가 출렁이면서 ‘롤러코스터’라는 말 이외에 표현할 단어가 없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관세로 인한 미국 경제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채 금리까지 급등하는 등 증시를 넘어 글로벌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하기도 했지만 중국에는 145%라는 비현실적인 관세를 유지하면서 미중 갈등 격화의 불씨는 여전한 상황입니다.
전 세계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시장 변동성을 키울 소식이 나왔는데요.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스마트폰·반도체·PC를 제외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반도체가 그 어느 산업보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좋은 의미로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무엇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지 채 100일이 지나지 않았을뿐더러 유예 기간이 끝난 후 상호관세 부과 여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협상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이 과정을 확인하며 시장 변동성에 대응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8개월 만에 다시 찾아온 亞증시 ‘블랙먼데이’
지난해 8월 5일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하락한 ‘블랙먼데이’를 기억하시나요? 당시 코스피지수가 장중 한때 10% 이상 떨어지면서 코로나 이후 약 4년 5개월 만에 거래를 20분간 중단시키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이 됐습니다. 일본 닛케이지수도 12% 넘게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미국발(發) 경기 침체와 인공지능(AI) 거품론,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 등 다양한 변수들이 맞물리며 아시아 증시가 파랗게 질렸었습니다.
그런데 8개월 만에 블랙먼데이가 재현됐습니다. 이달 7일 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 아시아 증시에서는 미국발(發) 상호관세 충격으로 대규모 ‘패닉셀’ 현상이 나타나며 폭락했습니다. 한국은 지난해 8월 이후 8개월 만에 코스피 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으며 일본 닛케이는 개장과 동시에 서킷브레이커가 걸렸습니다. 홍콩 항셍지수는 이날 13% 넘게 급락하며 1997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은 모두 5% 넘게 급락한 채 장을 마감했습니다. 특히 코스피의 경우 2023년 11월 1일(2301.56) 이후 최저치인 2328.20를 기록했습니다. 외국인은 코스피에서만 총 2조 937억 원을 내던지면서 지수를 끌어내렸습니다. 이는 2021년 8월 13일(2조 6989억 원) 이후 최대 순매도 규모입니다.
사실 이날 아시아 증시의 폭락은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앞서 4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정책을 수정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미국 3대 지수인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5.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5.97%), 나스닥종합지수(-5.82%)는 모두 급락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장 예측과 달리 공포 심리가 지나치게 확산돼 있어 이같은 패닉셀이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공포 지수’로 불리는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가 4일 45.31까지 올라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를 제외하고는 1989년 이후 도달한 적 없는 수치”라며 “극단적 공포가 본격화돼 낙폭을 키워 글로벌 주식시장의 모든 변수 영향을 압도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바닥 밑 지하…코스피 1년 5개월 만에 2300선 붕괴
바닥 밑에는 지하가 있었습니다. 7일 폭락을 겪은 아시아 증시는 다음 날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코스피는 비록 0.26% 오르는데 그쳤지만 ‘하방 지지선’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안도감이 형성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곧바로 사라졌는데요. 미국이 고강도 상호관세 발효를 현실화하고 미중 갈등 격화 우려까지 커지면서 9일 코스피는 1년 5개월 만에 2300선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특히 이날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자 트럼프 대통령발 ‘관세 폭탄’으로 전면적인 무역 전쟁 위험이 도래하면서 경기 침체를 우려한 외국인 투자가들이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위험 자산을 정리하고 가장 안전한 자산인 ‘현금’ 확보에 나섰다는 것이죠. 또 미국과 중국의 정면충돌이 예상되는 만큼 한국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의 패닉셀은 장기화 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있었습니다. 이에 코스피 2200선마저 붕괴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시장에 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채 금리 급등에 부담을 느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일 제외한 모든 국가에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하면서 모든 예측이 빗겨갔습니다. 먼저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하루 만에 9.5%, 나스닥종합지수는 12.16% 폭등했습니다. 이러한 온기는 아시아 증시까지 확산되며 코스피는 10일 6.60% 급등해 하루 만에 2400선을 회복했습니다. 이날 코스피의 상승률은 2020년 3월 24일(8.60%) 이후 5년 만의 최고치였습니다. 일본 닛케이는 무려 9% 넘게 오르며 7일 폭락장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도 했습니다.
‘145% vs 125%’…미중 관세 치킨게임 막 올랐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은 미국과 협상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지만 중국은 ‘145%’라는 사상 초유의 관세가 현실화됐습니다. 여기에 중국도 미국에 관세 125%를 부과하며 맞불을 놨습니다. 미중 무역 전쟁이 사실상 시작됐지만 이미 급등락을 반복한 글로벌 증시는 이전보다 잠잠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중 갈등에 대한 우려보다 관세 협상을 둘러싼 낙관론이 시장에 더욱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여기에 주말 동안 적어도 한국 증시에는 긍정적인 소식이 하나 더 추가됐습니다.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스마트폰·반도체·PC 등을 제외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12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세관국경보호청(CBP)이 △스마트폰 △노트북 △모니터 △반도체가 상호관세 정책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로 애플, 삼성전자(005930), TSMC 등이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요. 아마 애플과 삼성전자가 가격을 인상해 미국 물가에 충격을 주는 것을 완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직접적 수혜 기업으로 지목된 삼성전자가 한국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다시 한번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증시는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이번 스마트폰·PC 관세 유예 조치 역시 일시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조만간 다른 유형의 관세를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각국이 미국과 관세를 두고 어떻게 협상을 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시장 변동성에 대응해야 한다는 조언이 적지 않습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관세 정책과 협상 기대감을 중심으로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라며 “투자 심리가 여전히 취약한 가운데 90일 관세 유예가 모든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단기적으로는 상하방으로 높은 변동성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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