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방문한 충남 당진의 송전망 건설 현장. 현장에서는 지중화를 위한 지하 터널 굴착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공사 현장 관계자는 “굴착 작업만으로도 최소 10개월 이상 걸린다”며 “착공은 했지만 송전선로 준공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인근 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당진화력과 신송산 변전소를 연결하는 11.6㎞ 길이의 345㎸급 송전망 건설 사업이다. 하지만 사업 계획이 최초로 발표된 2013년 이후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지난해 5월부터 착공이 시작돼 원래 준공 목표였던 2021년보다 7년이나 넘게 지연되며 2028년쯤 준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민들이 환경 문제와 건강권을 이유로 지중화를 요구했고 결국 한국전력이 이를 수용하면서 사업이 지연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국가로 가는 길에 놓인 숨은 복병으로 전력망 문제를 꼽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운영 특성상 막대한 전력을 소비해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글로벌 에너지 관리 기업인 슈나이더일렉트릭에 따르면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8년까지 연평균 최대 36%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곳곳에서 송전선로 구축이 지연되면서 병목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당진화력과 신송산을 잇는 송전망 건설이 지연돼 석문국가산업단지에 추가 전력 공급이 멈춰선 상태다. 해당 산업단지는 가스공사의 LNG 비축 기지와 LG화학의 고성능 단열재 공장 등 대기업·국가기관 시설이 들어선 곳이다. 설령 AI 칩과 데이터센터를 대량으로 확보하더라도 전력이 없으면 가동이 불가능하거나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고품질 전력이 AI 시대의 무기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는 전력망 건설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 지연과 주민들의 반발 문제를 속도감 있게 풀어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령 서해안 지역에서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의 경우에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려 21년 만인 최근에야 준공돼 인근 산업단지 등에 전력 공급을 할 수 있었다. 해당 송전선로가 전력을 공급하는 충남 천안·아산 디스플레이 단지에는 330만 ㎡ 규모로 조성된 삼성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협력 업체 6곳이 자리해 있다. 한전 관계자는 “최근 마련된 전력망특별법이 인허가 절차 간소화에 일부 기여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주민 수용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전력망 구축 속도를 높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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