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미국에 1000억 달러(약 146조 원)를 투자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미국 반도체 산업 부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이 반도체 패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공장 등 제조 시설을 추가하는 것보다 TSMC의 연구개발(R&D) 기능을 옮겨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26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팻 겔싱어 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에 R&D 시설이 없다면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리더십을 가질 수 없다”며 “TSMC의 모든 R&D 시설은 대만에 있으며 아직 이를 이전할 것이라고 발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TSMC는 “미국에서 수행할 유일한 개발 작업은 이미 생산 중인 공정 기술에 대한 것”이라며 “핵심적인 R&D는 대만에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겔싱어 전 CEO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인해 TSMC와 같은 칩 제조 업체의 대미 투자를 끌어냈다”며 “이는 점진적으로 유익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칩 제조에 사용되는 최첨단 공정 기술 분야에서 뒤처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의 미래 리더십을 결정할 가능성이 있는 많은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여전히 세계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가 제정한 반도체지원법(CHIPS)을 폐지하고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모든 반도체에 25%의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기업들은 매우 부유해 지원할 필요가 없다”면서 “그들은 우리 사업의 95%를 훔쳤고 그것은 지금 대만에 있다”며 사실상 TSMC를 겨냥한 발언들을 이어왔다. 이에 TSMC는 1000억 달러(약 146조 원)를 들여 미국에 반도체 공장 3곳, 첨단 패키징(후공정) 공장 2곳 등을 짓겠다고 밝히는 등 누적 투자 규모만 1650억 달러에 이른다. TSMC의 최근 2~3년 치 매출액에 달하는 수준이다. TSMC의 이런 행보를 놓고 시장에서는 TSMC의 반도체 사업이 미국에 종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겔싱어는 R&D 조직은 대만에 그대로 두고 있다며 평가절하한 것이다. 한편 지난해 말 인텔을 떠난 겔싱어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글로벌의 파트너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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