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5일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를 단행한 것은 추락하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 때문이다. 국내외 주요 기관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1%대 초중반으로 낮출 정도로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시중에 돈을 풀어 내수를 살리는 게 시급하다고 본 것이다. 특히 정치권의 대립으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공회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통화 당국이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최근 국내외 주요 기관이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처참하다. 한국은행이 이날 내놓은 전망치는 1.5%로 지난해 11월(1.9%)보다 0.4%포인트나 낮아졌다. 정부 기관이 발표한 수치 중 가장 낮다. 한은은 미국발(發) 관세정책이 격화하면 올해와 내년 모두 경제성장률이 1.4%까지 떨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봤다.
국제기관의 평가는 더 암울하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씨티은행은 최근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5%에서 1.4%로 낮췄고 JP모건은 1.2%를 제시했다. 글로벌 리서치 전문 기업인 캐피털이코노믹스의 경우 한국의 올해 성장률이 1%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놓았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 확대로 소비가 부진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정책 불확실성이 더해졌다”며 “앞으로 국내 경제는 경제 심리 위축, 미국의 관세정책 등의 영향으로 내수 회복세와 수출 증가세가 당초 예상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추경 편성 지연도 기준금리 인하의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여야도 추경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지만 규모와 쓰임새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편성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재 선고가 2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사실상 추경이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통화정책만으로 한계가 있다며 20조 원 규모의 추경이 편성될 경우 경제성장률을 0.2%포인트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성장률 제고(0.07%포인트 상승)와 비교하면 효과가 3배 가까이 높은 셈이다.
다만 이날 금통위 위원 만장일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향후 인하 속도는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번 금리 인하에 따라 미국과 한국의 금리 차이가 1.5%포인트에서 1.75%포인트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미국이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만 추가로 금리 인하 속도전에 나설 경우 환율과 물가를 모두 자극할 수 있다. 실제 이날 금통위 위원 6명 중 4명이 3개월 후 금리에 대해 2.75%가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금통위 결과를 두고 ‘매파적 인하’라거나 ‘발톱을 숨긴 비둘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비둘기는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금통위원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유영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금통위원 6인중 4인이나 3개월 후 금리를 묶어야 한다고 말해 4월 추가 인하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면서 “빨라야 5월이나 7월은 돼야 추가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남진 원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도 “미국 경기 상황에 따른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의 금리 향방이 어떻게 될지에 따라 추가 인하 시점이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금리 인하 발표 후 원·달러 환율은 소폭 올랐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0원 오른 1430.4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금리 인하 발표 직후 장중 되레 1428원대로 떨어지다 소폭 오른 뒤 줄곧 1430원대 흐름을 유지했다. 정용호 KB증권 부부장은 “시장 인하 기대가 선반영된 영향에 오늘 시장은 비교적 안정된 흐름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국고채 3년물은 전 거래일보다 0.014%포인트 하락한 연 2.596%로 장을 마감했다. 10년물은 0.028%포인트 빠진 연 2.797%였다. 국고채 금리도 환율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는 평가다. 한은은 “최근 미국채 장기 금리가 하락하면서 10년물 금리가 더 크게 내렸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