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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방은 계좌 정지 대상 ‘제외’…진화하는 사기 못 따라가는 法[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사회 사회일반 2025.06.12 08:00:00로맨스 스캠과 리딩방 등 신종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나, 이를 근절·예방할 사법 시스템이 여전히 부실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기 피해 예방을 위한 계좌 정지 등 조치가 보이스피싱에 국한된 데다, 중요 증거 등 확보를 위한 플리바겐(유죄협상제도)는 여전히 도입되고 있지 않기 떄문이다. 전문가들은 해마다 진화하고 있는 사기 범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 사법 시스템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12일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가환급법)에 따르면, 전기통신금융사기란 ‘전기 통신을 이용해 타인을 기망·공갈함으로써 본인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하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계좌 정지를 통해 보이스피싱에 따른 자금 송금·이체, 출금 등 행위를 제한하지만 재화 공급이나 용역 제공을 가장한 신종 사기 행위는 제외돼 있다. 또 가상자산을 이용한 사기 행위가 크게 늘고 있지만 통신사기환급법 적용 대상은 여전히 금융회사로 한정돼 있다. 홍푸른 디센트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사기 범행이 의심될 경우 보이스피싱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계좌 등을 신속하게 지급 정지하는 등 피해금 회수와 관련된 법적 제도가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이스피싱에 맞춰 2011년 제정·시행된 통신사기환급법이 진화하는 사기 범죄를 따라 제때 개정되지 못하면서 피해자 보호 ‘사각지대’를 만들고 셈이지만, 법 개정은 여전히 ‘함흥차사’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환급법) 개정안이 10건 발의됐지만 단 1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계류 중인 이들 법안의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는 리딩방·로맨스스캠 등 신종 사기는 물론 인터넷 도박까지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가상자산사업자도 금융회사와 마찬가지로 통신사기환급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가상자산을 이용한 보이스피싱이 늘고 있는 만큼 가상자산회사도 지급 정지 등의 대상에 동참해야 한다는 얘기다. 피해 예방과 함께 이른바 사기 범죄 ‘윗선’ 체포 등 수사 효율을 위한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총책 등을 조기에 체포해야 피해자가 느는 것을 방지하고 피해금 환수까지도 이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플리바게닝은 형사 사건에서 본인 죄를 인정하거나 타인의 죄를 증언해주는 자에게 형량을 감면해주는 제도로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다. 국내의 경우 시세조종, 부정거래, 미공개 정보 이용 등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한해 적용되고 있다.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한 기업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감면해주는 리니언시제도(자진 신고자 감면 제도) 역시 운영 중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사기 피해를 줄이고 피해 금액을 조기에 환수하기 위해서라도 사기 범죄에 플리바게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모성준 사법연수원 교수는 “미국 등 해외의 경우 자금 수거책 등 가장 약한 연결고리에 대해 플리바게닝을 제시해 주요 증언이나 증거를 확보한다”며 “이를 통해 윗선 수사에 나서면서 피해 자금도 빠르게 동결해 피해자 구제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플리바게닝과 함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해야 수사를 위한 확실한 증거와 증언을 확보할 수 있지만 국내는 그렇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국내에도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범죄신고자법)에 따라 범죄 신고자에 대해 신병 경호, 보호, 법정 동행 등은 물론 이전비·구조금도 제공되는 제도가 있다. 대상에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를 비롯해 범죄단체, 상습 사기도 포함돼 있지만 예산은 한 해 4억 원대에 그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 신고자 보호 등 예산은 4억 1600만 원으로 2020년(5억 700만 원)보다 오히려 1억 원가량 감소했다. -
“英, 싱가포르처럼 사기 대응 컨트롤타워 구축해야” [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사회 사회일반 2025.06.12 06:40:00급증하는 사기 범죄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예방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국내에서는 사기 범죄 컨트롤타워가 부재해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범국가적 차원에서 통합사기방지센터를 설립해 사기 예방 정책을 펼치고 있는 영국이나 싱가포르 등 선진국의 사례를 도입해 우리나라도 기관별로 흩어져 있는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사기방지 분야 권위자인 서준배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10일 “최근 세계 각 국가들이 설치하고 있는 통합사기방지센터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모든 사기에 이용되는 대포통장·중계기 등 도구들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예방 차원의 역할을 맡고 있다”며 “실제 싱가포르의 경우 2019년 센터 구축 이후 전체 피해 금액이 감소했으며 2022년 기준 사기 의심 문자메시지 740만 건을 확인해 사기 의심 전화번호 4만 7000개를 차단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현재 경찰청이 통합대응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계점이 뚜렷하다. 우선 명시된 신고 대상이 보이스피싱이나 발신번호 거짓표시 신고, 스미싱 등 피싱류로 국한돼 있다. 현재 창궐하고 있는 리딩방을 포함한 투자 사기나 로맨스스캠 등 신종 사기는 신고 대상이 아니다. 우리나라 전기통신금융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법률 특별법 제2조는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제외한다’고 명시하는데 해당 조항으로 인해 투자 사기가 신고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기 예방의 주도권을 쥐고 각 국가기관을 지휘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경찰이 주요 사기 관련 사건을 담당하고 있지만 검찰 또한 별도로 대응하고 있으며 금융감독원도 보이스피싱지킴이라는 신고센터를 따로 두고 있다. 외국의 사기통합센터의 경우 경찰과 금융 당국 등 국가기관과 은행이나 통신사 등 민간기업이 합작으로 참여한다. 일례로 싱가포르는 금융회사 직원들을 센터에 상주시켜 경찰관들과의 협업을 통해 사기 이용 계좌에 대한 신속한 동결 조치가 가능하게 했다. 서 교수는 민관 합작 사기통합센터 구축을 위해서는 다중사기피해방지법이 하루 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중사기피해방지법은 법적 규제에서 배제된 신종 사기 범죄를 대상에 포함시키고 정보통신망법 규제로 인해 불가한 사기 조직에 대한 정보 수집 등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다. -
“英, 싱가포르처럼 사기 대응 컨트롤타워 구축해야” [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사회 사회일반 2025.06.11 17:57:27급증하는 사기 범죄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예방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국내에서는 사기 범죄 컨트롤타워가 부재해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범국가적 차원에서 통합사기방지센터를 설립해 사기 예방 정책을 펼치고 있는 영국이나 싱가포르 등 선진국의 사례를 도입해 우리나라도 기관별로 흩어져 있는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사기방지 분야 권위자인 서준배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10일 “최근 세계 각 국가들이 설치하고 있는 통합사기방지센터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모든 사기에 이용되는 대포통장·중계기 등 도구들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예방 차원의 역할을 맡고 있다”며 “실제 싱가포르의 경우 2019년 센터 구축 이후 전체 피해 금액이 감소했으며 2022년 기준 사기 의심 문자메시지 740만 건을 확인해 사기 의심 전화번호 4만 7000개를 차단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현재 경찰청이 통합대응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계점이 뚜렷하다. 우선 명시된 신고 대상이 보이스피싱이나 발신번호 거짓표시 신고, 스미싱 등 피싱류로 국한돼 있다. 현재 창궐하고 있는 리딩방을 포함한 투자 사기나 로맨스스캠 등 신종 사기는 신고 대상이 아니다. 우리나라 전기통신금융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법률 특별법 제2조는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제외한다’고 명시하는데 해당 조항으로 인해 투자 사기가 신고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기 예방의 주도권을 쥐고 각 국가기관을 지휘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경찰이 주요 사기 관련 사건을 담당하고 있지만 검찰 또한 별도로 대응하고 있으며 금융감독원도 보이스피싱지킴이라는 신고센터를 따로 두고 있다. 외국의 사기통합센터의 경우 경찰과 금융 당국 등 국가기관과 은행이나 통신사 등 민간기업이 합작으로 참여한다. 일례로 싱가포르는 금융회사 직원들을 센터에 상주시켜 경찰관들과의 협업을 통해 사기 이용 계좌에 대한 신속한 동결 조치가 가능하게 했다. 서 교수는 민관 합작 사기통합센터 구축을 위해서는 다중사기피해방지법이 하루 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중사기피해방지법은 법적 규제에서 배제된 신종 사기 범죄를 대상에 포함시키고 정보통신망법 규제로 인해 불가한 사기 조직에 대한 정보 수집 등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다. -
리딩방·로맨스스캠 '계좌정지' 안돼…法개정 하세월 [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사회 사회일반 2025.06.11 17:56:1230대 김 모 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투자 강의를 접하고 비상장 가상자산에 투자했다가 3000만 원을 잃었다. 전문 투자자 등을 사칭한 전형적인 리딩방 사기였다. 그는 혹시 모를 추가 자금 인출을 걱정해 경찰서에 계좌 정지를 요청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기관 사칭이나 대출 권유 등 보이스피싱이 아닌 투자 사기라 계좌를 정지할 수 없다는 사유였다. 김 씨는 “경찰에서 리딩방 투자 사기의 경우 계좌 동결은 물론 추후 피해금 환급도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인터넷 게시판에 ‘보이스피싱으로 허위 신고하면 계좌 동결이 가능하다’는 글을 봤지만 범죄를 저지른다는 생각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사기 피해 예방을 위한 시스템이 보이스피싱에 국한돼 있어 리딩방·로맨스스캠 등 급증하는 신종 사기 피해 방지에 무력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해마다 진화하고 있는 사기 범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 사법 시스템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환급법) 개정안이 10건 발의됐지만 단 1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계류 중인 이들 법안의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는 리딩방·로맨스스캠 등 신종 사기는 물론 인터넷 도박까지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가상자산사업자도 금융회사와 마찬가지로 통신사기환급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가상자산을 이용한 보이스피싱이 늘고 있는 만큼 가상자산회사도 지급 정지 등의 대상에 동참해야 한다는 얘기다. 통신사기환급법에 따르면 전기통신금융사기란 ‘전기 통신을 이용해 타인을 기망·공갈함으로써 본인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하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계좌 정지를 통해 보이스피싱에 따른 자금 송금·이체, 출금 등 행위를 제한하지만 재화 공급이나 용역 제공을 가장한 신종 사기 행위는 제외돼 있다. 또 가상자산을 이용한 사기 행위가 크게 늘고 있지만 통신사기환급법 적용 대상은 여전히 금융회사로 한정돼 있다. 보이스피싱에 맞춰 2011년 제정·시행된 통신사기환급법이 진화하는 사기 범죄를 따라 제때 개정되지 못하면서 피해자 보호 ‘사각지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홍푸른 디센트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사기 범행이 의심될 경우 보이스피싱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계좌 등을 신속하게 지급 정지하는 등 피해금 회수와 관련된 법적 제도가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 예방과 함께 이른바 사기 범죄 ‘윗선’ 체포 등 수사 효율을 위한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총책 등을 조기에 체포해야 피해자가 느는 것을 방지하고 피해금 환수까지도 이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플리바게닝은 형사 사건에서 본인 죄를 인정하거나 타인의 죄를 증언해주는 자에게 형량을 감면해주는 제도로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다. 국내의 경우 시세조종, 부정거래, 미공개 정보 이용 등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한해 적용되고 있다.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한 기업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감면해주는 리니언시제도(자진 신고자 감면 제도) 역시 운영 중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사기 피해를 줄이고 피해 금액을 조기에 환수하기 위해서라도 사기 범죄에 플리바게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모성준 사법연수원 교수는 “미국 등 해외의 경우 자금 수거책 등 가장 약한 연결고리에 대해 플리바게닝을 제시해 주요 증언이나 증거를 확보한다”며 “이를 통해 윗선 수사에 나서면서 피해 자금도 빠르게 동결해 피해자 구제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플리바게닝과 함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해야 수사를 위한 확실한 증거와 증언을 확보할 수 있지만 국내는 그렇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국내에도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범죄신고자법)에 따라 범죄 신고자에 대해 신병 경호, 보호, 법정 동행 등은 물론 이전비·구조금도 제공되는 제도가 있다. 대상에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를 비롯해 범죄단체, 상습 사기도 포함돼 있지만 예산은 한 해 4억 원대에 그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 신고자 보호 등 예산은 4억 1600만 원으로 2020년(5억 700만 원)보다 오히려 1억 원가량 감소했다. -
兆단위 사기 속출…구제액은 연간 77억뿐
사회 사회일반 2025.06.08 17:37:16가상자산 등 신기술을 앞세운 불법 사기가 기승을 부리며 조 단위 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나 정부의 범죄 피해 재산 환부 금액은 최근 5년 평균 8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피해자 구제 방안으로 꼽히는 법원의 배상명령 청구 인용률도 30%대까지 떨어졌다. 8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범죄 피해 재산 환부 평균 금액은 77억 7577만 원에 그쳤다. 지난해의 경우 환부 금액이 293억 558만 원에 이르기는 했으나 2020년부터 2023년까지는 8000만~52억 원에 불과했다. 사기 피해 구제 방안은 크게 범죄 피해 재산 환부, 배상명령 청구, 민사소송 등 세 가지다. 그중에서 환부는 부패 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제6조에 따라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해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하지만 범죄 피해 재산의 범위가 사기죄 가운데서도 상습·범죄단체 등으로 제한돼 있는 등 법적 한계가 뚜렷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법원이 직접 가해자에게 피해 금액을 돌려주라고 명령하는 배상명령 역시 인용률이 2020년 49.8%에서 2023년 35.5%까지 낮아졌다. 이런 가운데 국내 사기 사건은 2014년 24만 4008건에서 2023년 35만 4055건으로 45.1%나 급증했다. 또 전세사기·리딩방 등 신종 사기가 급속도로 늘어나며 수천억에서 조 단위 피해까지 발생하고 있다. 홍푸른 디센트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가해자가 피해를 회복시키게 하는 신속한 절차를 만드는 방식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배상명령 신청 10건 중 7건은 각하…피해자 두 번 운다
사회 사회일반 2025.06.08 17:35:42창원지방법원 통영지청이 지난달 21일 사기 혐의로 피고인 A 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A 씨는 카페 인수 자금이라고 속여 4050만 원을 편취하고 매월 갚기로 한 피해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피해자의 배상 신청에 대해서는 ‘배상 책임 범위가 명백하지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날 서울남부지방법원도 사기 혐의로 기소된 B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도 피해자들의 배상 신청은 각하했다. 배상 책임의 범위가 명백하지 않다는 게 사유였다. 8일 사법연감에 따르면 법원의 배상명령 인용률은 2023년 35.5%를 기록했다. 2020년 49.8%로 절반 정도 인용되다가 최근 수년간 꾸준히 낮아지는 추세다. 사기 등 범죄 피해자가 제기한 배상명령 신청 10건 가운데 7건이 각하되고 있는 것이다. 배상명령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소송촉진법)에 따른 국내 대표적인 피해자 구제 조치다. 사기, 절도 등 재산 범죄 피해자가 별도 민사소송 없이 형사재판 과정에서 손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1981년 도입됐다. 소송촉진법 제25조(배상명령)에 따르면 유죄 선고 경우 법원은 직권이나 피해자 등 신청에 따라 범죄 행위로 발생한 물적 피해, 치료비 손해, 위자료의 배상을 명할 수 있다. 대상 혐의도 사기를 비롯해 상해, 성폭력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해마다 법원의 배상명령 인용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피해자들에게는 효과적인 피해 구제 사다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법원의 배상명령 각하 사유는 주로 피해자 성명·주소가 분명하지 않거나, 피해 금액이 특정되지 않은 경우다. 또 피고인의 배상 책임의 유무 또는 그 범위가 명백하지 않은 때도 포함된다. 배상명령으로 인해 공판 절차가 현저히 지연될 우려가 있거나 형사소송 절차에서 배상명령을 하는 게 타당하지 않는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각하 사유다. 문제는 배상명령 신청의 필수 요건인 피해 금액을 사기 피해자들이 스스로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여러 계좌가 동원되고, 피해자가 수천 명에 이르는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 금액을 특정해 제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게다가 피고인으로부터 일부라도 피해 금액을 변제받았을 경우 법원이 ‘피고인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해 추후 보상받을 길이 막힐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5000만 원을 편취한 후 단 100만 원이라도 갚으면 이미 일부를 배상했기 때문에 피고인의 배상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배상명령 청구는 형사재판과 함께 진행되는데 1심 판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는 “배상명령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민사재판에 해당하는 보상 판단을 형사재판에서 함께 해주는 것이지만 그만큼 기간도 오래 걸린다”며 “반드시 피해 금액을 산정해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데, 변호사 등 전문가들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기 사건의 지능·고도화로 돈의 흐름이 한층 복잡해지면서 피해자가 스스로 어느 정도 금전적 손실을 입었는지 산정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일각에서는 피해 상황이 심각한 사기 피해자의 경우 국선 변호사 수를 늘려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지만, 이는 다른 범죄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상습·범죄단체 사기 아니면 보상 불가…환부 결정돼도 하세월
사회 사회일반 2025.06.08 17:34:34서초동 소재 A 변호사는 최근 사기 피해자와의 상담에서 피해 금액과 관련해 환부(還付) 신청과 별도로 민사소송을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환부는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부패재산몰수법) 제6조(범죄피해재산의 특례)에 따른 사기 피해자 구제 장치로 지난 2019년 8월 시행됐다. 검사의 환부 개시 결정에 따라 사기 등 범죄 피해 금액을 피해자들이 절차에 따라 되돌려받을 수 있으나 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 후 과정이 진행돼 오랜 시일이 소요된다. 피해자가 여럿일 경우 피해 금액 산정도 어려워 환부 대상 피해자로 선정되기는 쉽지 않다. A 변호사는 “검찰이 몰수한 한정된 금액을 나누는 구조라 소액에 그칠 수 있어,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환부보다는 민사소송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리딩방, 로맨스 스캠 등 신종 사기가 등장하면서 피해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나 피해자들의 구제 ‘사다리’ 중 하나인 환부 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환부 대상의 기준이 되는 범죄 피해 재산의 범위가 사기죄 가운데서도 상습·범죄단체 등으로 제한돼 있는 등 법적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사기 수법이 점점 다양해지고 피해자들의 빠른 구제가 절실한 데도 환부 대상이 너무 제한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행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르면 범죄 피해자가 범인에 대한 재산반환청구권이나 손해배산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없어 피해 회복이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범죄 피해 재산을 몰수·추징할 수 있다. 또 이를 피해자에게 환부한다. 범죄 피해 재산은 피의자가 범죄 행위를 통해 피해자로부터 취득한 재산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보이스피싱, 유사수신과 함께 형법상 사기죄가 환부 대상에 포함된다. 단 사기죄의 경우 상습범이거나 범죄단체 조직 범행이라는 단서 조항이 붙는다. 최근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리딩방이나 로맨스 스캠 등은 사기죄에 포함되는데 상습범이라든가, 범죄단체의 조직적 범죄라고 인정되지 않으면 환부 대상 자체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홍푸른 디센트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효과적인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한층 폭넓은 몰수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부패재산몰수법상 사기 범죄는 상습, 범죄집단 등으로 범위의 제한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금전 손실을 입은 사기 피해자 입장에서는 빠른 구제가 절실한 데도 환부 대상 혐의가 다소 협소하게 규정돼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환부 금액은 해마다 수천만 원에서 수백억 원 수준으로 사기 피해 금액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 피해 재산 피해자 환부 금액은 293억 558만 원으로 최근 5년 내 최고 금액을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 5년 통계를 보면 환부 금액은 2022년에는 8907만 원, 2023년에는 5억 771만 원에 그쳤다. 이에 따라 환부 대상 범죄 확대 등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법조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부패재산몰수법 개정안은 3건이다. 전세사기를 비롯해 리딩방, 가상자산 사기, 로맨스 스캠 등 신종 사기를 몰수 및 추징 보전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전세사기의 경우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 보호가 이뤄지지만 경매·매각 유예와 정지, 공공임대주택 지원, 주거 안정 자금 융자 등 지원만 이뤄질 뿐, 환부 대상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라 검사가 환부 개시 결정을 하더라도 시일이 오래 걸리는 등 불확실성이 큰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부패재산몰수법 및 시행령에 따르면 검사는 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 이후 피해자에게 몰수·추징 자금을 환부하기 위한 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 이후 통지·공고를 거쳐 피해자들로부터 범죄 피해 재산 환부 청구를 받는다. 검찰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규모 유사수신이나 조직적 금융 사기의 경우 피해자만 수천 명에 달하는 데다, 각자 피해 금액 산정에 충돌이 있을 수 있어 개별 환부 규모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사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선정 등 과정이 복잡해 짧게는 3개월에서 6개월까지 시일도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검찰은 유사수신 사건에 대해 100억 원 규모의 환부 개시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피해자만 4000여 명에 달해 최종 환부까지는 매우 오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지자체 사후 관리 ‘나 몰라라’…담당 공무원 부정수급 가담도 [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사회 사회일반 2025.06.01 17:53:58“일단 지급하고 나면 지급 기관에서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연루된 경우 적발은 더 어렵습니다.”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수사에 참여했던 일선 경찰들이 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수사의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부실한 사후 관리를 꼽았다. 보조금 지급 이후 ‘나 몰라라’ 하고 손을 뗀 바람에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기 일쑤고 심지어 공직자가 부정 수급에 가담하는 사례도 빈번하다는 것이다. 전남 지역의 한 경찰관은 “업체에 등록된 직원들이 실제로 근무하고 있는 게 맞는지 담당 공무원이 확인해주지 않아 수사에 난항을 겪은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자체 추적을 통해 보조금을 받던 이들이 ‘유령 직원’이라는 점을 밝혀내기는 했지만 담당 공무원의 협조가 있었다면 수사가 더욱 빠르게 이뤄졌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보조금 선정 이후에도 서류를 제출하면 추가로 돈을 받을 수 있는 사업도 많다”며 “대다수 기관들이 첫 선정 때만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고 추가 서류들은 대충 보고 넘기는 경우가 허다해 이런 방식으로 새는 보조금이 상당히 많다”고 덧붙였다. 브로커들 역시 사후 관리의 빈틈을 교묘하게 파고들고 있다. 브로커들로부터 수차례 국고보조금 신청 대행 제안을 받았던 스타트업 대표 김 씨는 “브로커들이 보조금을 지급받은 후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폐업만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지원서에 썼던 내용과 결과물이 다르다는 이유로 중도 탈락시킬 경우 기관의 과실로 잡히기 때문에 기관에서도 지급 이후에는 업체가 뭘 하든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했다. 공무원들이 업체·브로커 등과 손잡고 사기극을 벌이는 사례도 끊임없이 적발되고 있다.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2023년 12월 국가보조금 41억 원을 부정 수급한 일당을 검거했는데 이 중에는 모 구청 공무원 A 씨도 포함돼 있었다. A 씨는 업체 회장 B 씨 등에게 사업 신청 과정에서 필요한 지자체 확약서 작성 등 각종 편의를 봐준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같은 달 울산에서는 공공기관 임원 등 11명이 이산화탄소 규제 기술력을 허위로 내세우며 유령 법인을 차려 위조 서류로 국책 사업에 참여해 총 68억 원을 편취하기도 했다. 부정 수급 점검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적발률에도 큰 차이가 난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타 기관들과 진행한 합동 현장 점검 결과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적발률은 43%로 사업 담당 부처가 자체 점검했을 때의 적발률(5%)보다 8배 이상 높았다. 임영진 기재부 국고보조금 부정수급관리단장은 “기관장이나 기관 직원이 연루된 경우가 많다”며 “100억 원이 넘는 적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
“수수료 20% 주면 사업 따내겠다” 브로커 기승[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사회 사회일반 2025.06.01 17:52:25서울에서 8년째 문화 분야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김관석(가명) 씨는 최근 몇 년간 국고보조금 사업 선정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경기 악화로 재정 사정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몰리면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진 까닭이다. 쓴맛을 삼키고 또 새로운 지원서를 쓰고 있던 김 씨는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들은 본인들을 ‘국고보조금 전문 기업’이라고 소개하며 사업을 따낼 테니 보조금의 20%를 수수료로 달라고 제안했다. 업계별로 맞춤형 ‘합격 매뉴얼’을 갖추고 있고 심사위원과도 친분이 있다는 말에 김 씨는 순간 솔깃했지만 양심을 가책을 느껴 결국 고민 끝에 제안을 거절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가 허술한 틈을 타 지원서를 대신 작성해주거나 허위로 꾸며 국고보조금을 타내는 ‘브로커’들이 판치고 있다. 1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브로커 업체들은 업계별로 전담팀을 꾸려 지원서, 발표 자료 및 대본은 물론 시장 분석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아준다. 주관처와 심사위원이 선호하는 형태에 맞춰 자료를 준비하기 때문에 이들의 손을 거치면 선정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전언이다. 심사위원과 친분이 있는 브로커라면 몸값은 더 높아진다. 김 씨는 “심사위원을 직접 아는 브로커들은 보통 시세보다 1.5배 정도 비싼 수수료를 요구한다”며 “돈도 현금으로만 받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도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스타트업은 돈 한 푼 한 푼이 아쉽기 때문에 유혹에 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브로커들은 아예 지원 자격을 허위로 꾸며내 눈 먼 돈을 타내기도 한다. 부산지법은 이달 22일 사기, 보조금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국고보조금 브로커 A 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A 씨는 부산 지역 업체들을 상대로 ‘실제 근무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가짜 근로계약서·유급휴직신청서 등을 쓰고 증빙 자료를 제출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해 매출 실적을 만들어주겠다’ 등의 제안을 해 총 3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부정하게 받도록 도왔다. 그는 이 과정에서 국고보조금 신청 관련 업무를 하려면 노무사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고등학교 동창들이 운영하는 노무법인의 명의를 빌려 영업한 혐의(공인노무사법 위반)도 받는다. 기술보증기금의 허점을 노려 수십억 원 규모의 대출 사기를 친 브로커 B(37) 씨도 최근 수원지법으로부터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B 씨는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자들을 접촉, 이들 명의로 유령 법인을 설립한 뒤 허위 사업계획서를 기술보증기금에 제출해 보증 금액 1억 원 상당의 기술보증서를 발급받았다. 이후 이 보증서를 은행에 제출해 저신용자 명의로 대출을 받게 해줬고, 대가로 수수료를 받았다. 이 같은 수법으로 편취한 대출금은 총 25억 원, 편취한 수수료는 약 6억 원에 달한다. 법원은 “기술보증보금의 공적 자금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모인 것과 같으므로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 전체에 미친다”며 “피해 규모가 매우 크고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
“공장 짓겠다”며 나랏돈 받아 땅 장사…‘뒷돈’도 오갔다
사회 사회일반 2025.06.01 17:46:23전라남도 지역의 한 중소기업 대표 A 씨는 도내 토지를 매입해 공장을 증축하겠다는 명목으로 전남도로부터 보조금 5억 원을 받았다. 당연히 도의 허가 없이 매도하거나 양도, 담보 제공이 불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었다. 하지만 A 씨는 보조금을 받은 직후 매입한 토지를 그대로 매각했다. 경찰은 A 씨를 5월 검찰에 송치했고 전남도는 A 씨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며 보조금 5억 원에 대한 회수 절차에 돌입했다. A 씨뿐만이 아니다. 경찰의 이번 수사에 따르면 전남 지역에서만 30개 업체가 130억 원의 보조금을 부정하게 수급한 정황이 발각됐다. 심지어 보조금을 받은 토지를 은행에 담보로 제공해 현금을 융통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1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기준 110조 원까지 불어난 국고보조금이 전국 곳곳에서 사기꾼들의 손에 의해 줄줄이 새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시설을 운영하는 명목으로 지급받은 돈을 유용하거나, 위조 서류로 국책 사업에 참여해 보조금을 편취하는 등 수법도 다양하다. 기획재정부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매년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을 적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부정 수급 과정에서 공무원들까지 직접 개입한 경우도 적잖아 적발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전남경찰청이 지난달 적발한 대규모 보조금 부정 수급 사례는 그 규모와 과정이 다소 충격적이다. A 씨는 전남도로부터 입지보조금과 시설보조금 등 5억 원을 받은 뒤 공장 부지 명목으로 토지를 매매하고 이를 그대로 매각한 혐의를 받는다. 입지보조금은 지자체에서 관내에 공장을 신축 또는 증축해 고용을 창출하라는 뜻에서 5년간 사업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토지 매매가의 30%를 업체에 주는 지원책이고 시설보조금은 공장 증설에 20억 원 이상 투자한 기업에 투자 금액의 5%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당연히 토지를 업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데 이 단서 조항이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A 씨 사례가 불거지자 전남경찰청은 도내 업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A 씨를 포함해 무려 30곳에 달하는 업체가 교부 목적에 맞지 않게 금원을 오용하는 등 부정한 방식으로 보조금을 수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개인회사 3곳, 주식회사 27곳이었다. 30개 업체 중 A 씨 업체를 제외하고 26곳은 보조금으로 매입한 토지를 도의 허가 없이 은행에 담보로 맡겨 현금을 확보했다. 3곳은 토지의 소유권 이전이 이뤄졌거나 부동산에 신탁등기·가등기·압류 등이 걸려 있었다. 담보로 제공한 토지는 경매에 넘어갈 경우 회수조차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공장을 지으라고 토지 구매에 보조금을 보탠 지자체가 눈 뜨고 코 베이는 식으로 엉뚱하게 기업의 배를 불린 것이다. 민간 위탁 운영자가 지자체가 운영하는 사업을 마치 개인사업처럼 운영해 국고보조금을 타낸 사례도 있었다. 전남경찰청은 지난해 10월 도내 조성된 마리나의 민간 위탁 운영자 2명을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관내 학교들과 연계해 생활 스포츠 클럽을 운영한다는 명목으로 받은 보조금을 편취해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구체적으로 해양 레저 스포츠 체험 교실 운영 명목의 국고보조금 2억 600만 원 중 1억 550만 원을 횡령하는 등 총 5억 6000만 원 상당을 유용했다. 지인의 이름을 빌린 ‘유령 강사’를 등록해 지자체로부터 급여를 지원받았는데 이 중 6분의 1은 이름을 빌려준 지인에게 용돈으로 줬고 나머지는 편취했다.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설립된 시민단체들도 나라 곳간을 갉아먹는 범죄를 서슴지 않고 있다. 2월 부산지법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과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애인 단체 사무총장과 감사 등 2명에게 징역 4년과 징역 5년 6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단체가 위탁받은 해운대해수욕장 파라솔 대여 사업과 활동 지원 급여 제공 사업을 전대받고 개인적으로 운영했다. 또한 시군구에 활동 지원 급여 비용을 청구해 보조금 약 5억 7465만 원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국고보조금을 노린 사기가 판을 치는 가운데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부정 수급 사실이 발각될 경우 형사처벌 외에 2~5배의 제재부가금을 부과한다는 사실을 더 강력하게 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원칙적으로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로 다뤄지는 국고보조금 유용에 대해 사기죄와의 상상적 경합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상상적 경합이란 한 개의 행위가 여러 혐의의 구성 요건을 충족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보조금을 횡령하는 것이 보조금 관련 법 위반에도 해당하지만 지급 주체인 ‘대한민국’을 기망해 금원을 편취한 사기에도 해당한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판례에서 법원은 피해자를 대한민국으로 적시하고 사기 혐의를 인정한 바 있다. -
[단독]눈먼 돈 국고보조금…작년만 1200억 샜다
사회 사회일반 2025.06.01 17:35:47최근 2년 연속 1000억 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이 사기꾼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적발 규모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 새고 있는 국고보조금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법원은 국고보조금 횡령 행위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사기죄’로 규정하며 처벌에 나서고 있으나 경기 악화 등을 틈타 부정 수급을 유혹하는 브로커들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1일 서울경제신문이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한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액은 1232억 원에 달했다. 2021년 674억 원에 불과했던 부정 수급액은 다음해 대대적인 전수조사가 이뤄지며 5517억 원으로 크게 늘어난 후 최근 2년 연속 1000억 원대 규모를 보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드러나지 않은 보조금 횡령 사건이 적발된 사례보다 많을 것”이라며 “수사를 통해 밝혀진 부정 수급액은 실제 횡령액보다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사기 수법은 점점 대담해지고 있다. 전남경찰서는 지난달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중소기업 대표 A 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A 씨는 공장을 신·증축 하겠다며 입지 보증금 등 5억 원을 수급한 뒤 공장 부지용 토지를 매매하고 이를 다시 매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남 지역에서만 30개 업체가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130억 원의 보조금을 부정 수급한 정황이 포착됐다. 국고보조금 사기는 내부 고발도 어려운 구조라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검거 인원은 1231명으로 2023년 2112명의 절반에 그쳤다. 경찰 관계자는 “보조금을 관리하는 공무원이 보조금 사후 관리 단계에서 인지하고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하지 않는 이상 실체에 접근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분야별로 보면 지난해 기준 사회복지 분야에서 가장 많은 533명이 검거됐다. 유형별로는 ‘허위 신청 보조금 편취’가 1086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
보이스피싱 피해액 1조 원 목전… 피해자들의 삶은 망가졌다 [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사회 사회일반 2025.05.22 09:10:44평소처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김 모(45) 씨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매캐한 연기 속에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가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보이스피싱으로 2억 5000만 원을 잃은 아내가 신변을 비관해 자녀들과 동반 자살을 시도한 것이었다. 결국 열두 살 아들은 끝내 숨을 거뒀고, 뒤늦게 의식을 되찾은 아내는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다. 아홉 살 딸은 뇌 손상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김 씨는 현재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딸이 깨어났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밤낮으로 재활비와 치료비를 모으고 있다. 날로 증가하는 사기 범죄가 피해자의 삶과 가족, 나아가 민생을 위협하고 있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경찰청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보이스피싱 사기로 인한 피해액은 3116억 원에 육박했다. 2023년 피해액이 4472억 원, 2024년에 8545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가파른 증가세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추세라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피해액이 1조 원을 넘게 된다”고 밝혔다. 발생 건수 역시 3월까지 5878건을 기록해 연간으로는 지난해의 2만 839건을 넘을 것으로 관측된다. 사기 수법이 치밀해지면서 1인당 피해 금액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발생 건수당 피해 금액은 2022~2023년 2400만 원 안팎에서 2024년 4100만 원으로 수직 상승했고 올해는 5300만 원까지 치솟았다. 본지가 직접 사기 피해자 1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설문 조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드러났다. 1억~5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는 답변이 36명으로 가장 많았고 5억 원 이상을 뜯긴 피해자도 2명이나 있었다. 단일 최고 피해액은 6억 3000만 원에 달했다. ◇셋 중 하나는 1억 이상 피해…93%가 한 푼도 못 돌려받아 사기 범죄가 갈수록 조직화되면서 피해 규모도 더욱 커지는 가운데 피해자 셋 중 하나는 1억 원 이상의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또 절반가량은 배우자와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돼 이혼·별거·파혼을 했거나 앞둔 것으로 나타났다. 소중한 자산을 날린 데 이어 주변인들과의 관계까지 붕괴되면서 열 중에 아홉은 우울증, 수면 장애 등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진행한 사기 피해자 심층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 금액이 ‘1억 원 이상~5억 원 이하’라고 답한 비율이 전체 응답자 111명 중 32%로 가장 높았다. ‘5억 원 이상’이라고 답한 피해자도 2명(2%)으로 전체의 3분의 1 이상이 억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5000만 원 이상~1억 원 미만’ ‘1000만 원 이상~5000만 원 미만’이라는 응답자 비율도 각각 20%, 14%에 달했다. ‘억 소리’ 나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사기범죄 특성상 범인이 검거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실제 응답자의 89%는 ‘아직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고 답했다. 사기 피해를 당한 지 6개월이 넘은 응답자가 전체의 59%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검거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로맨스 스캠으로 1억 2000만 원을 날린 한 피해자는 “경찰에 1년 전에 신고했지만 미제 사건으로 수사 중지된 상태”라며 “자금책들이 외국에 있어서 못 잡는다고 하더라”고 한탄했다. 피의자 검거가 되지 않고 있는 만큼 피해액을 돌려받은 경우도 사실상 없다시피하다. 설문 응답자의 93%는 피해액을 단 한 푼도 못 돌려받았다고 답변했고 ‘일부 환수’와 ‘전액 환수’는 각각 3.5%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응답자의 70% 이상이 당한 신종 사기(투자 사기, 로맨스 스캠, 리뷰·부업 사기)의 경우 보이스피싱과 달리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 계좌 정지, 피해자 보상 등이 일절 불가능하다. 코인 사기로 7400만 원을 날린 한 주부는 “변호사 상담을 받아보니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거짓말해서 범행에 쓰인 대포 통장을 지급 정지하라고 하더라. 양심에 찔려 차마 그렇게는 못했다”고 토로했다. 비극은 단순히 돈을 날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응답자의 40%가량은 이혼·별거 등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 단절 및 악화를 겪고 있었다. 갈등이 심각한 이유는 피해 자금 출처에서 드러났다. 개인 자산만 쓴 경우가 49%로 가장 많았지만 가족·지인 돈까지 빌린 경우도 12%, 대출 혹은 사채를 끌어다 쓴 경우도 29%에 달했다. 비상장주식 사기로 8500만 원을 날린 40대 여성 피해자는 “아들 전역 후 자취방 전세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대출까지 3500만 원가량 껴서 투자했다가 사기당했다”며 “남편과 사이가 너무 안 좋아져서 현재 이혼 준비 중”이라고 했다. 가장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가 붕괴되면서 내면도 무너졌다. 사기 피해로 인한 심리적 영향을 묻자 응답자의 35%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답했다 ‘수면 장애(26%)’ ‘대인 기피증(17%)’ ‘공황 장애(11%)’ 등까지 합하면 전체의 90%가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리딩방 사기로 전 재산 1억 5000만 원을 날린 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한 50대 피해자는 “즐기지 않던 술만 늘었다”며 “지옥은 사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현실에 공존할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가족과 의절하고 파혼…공황장애 걸려 운전대도 못 잡아" “사기를 당하고 난 후 형과 어머니로부터 의절 당했어요. 아버지도 예전에 꽤 큰 돈을 사기 당하셨는데 저까지 이렇게 되니 가족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리딩방 사기 피해자인 30대 남성 김 모 씨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가족이 그렇게 투자를 말렸는데도 당시에는 눈이 돌아 말을 듣지 않았다”며 담담한 목소리로 피해 후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가 날린 금액은 개인 자산 1억 3000만 원에 더해 가족 돈 8000만 원, 연 이자율 17%의 카드 단기 대출 3000만 원까지 총 2억 3000만 원. ‘급등주 정보를 준다’는 리딩방 일당의 꼬드김에 넘어가 사설 거래소에 거액을 넣었지만 알고 보니 숫자 하나하나 다 조작된 사기 사이트였다. 김 씨는 “사기를 당한 후 사업도 접었고 상견례까지 마친 여자친구와도 차마 결혼할 수 없어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했다”며 “나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잘 모르겠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갈수록 교묘해지고 기업화되는 사기 범죄 앞에 피해자들의 삶은 속절 없이 무너지고 있다. 본지는 사기 이후 피해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실태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의 피해자 일곱 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사기를 당하게 된 사연과 피해 금액은 제각각이었지만 한순간의 유혹에 넘어간 대가는 비슷하게 처참했다. 우선 피해자 일곱 명 모두 모은 재산을 대부분 날린 것은 물론 빚더미까지 떠안게 돼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밤낮으로 쿠팡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정 모 씨는 “버는 족족 이자로 나가니까 내 돈 같지가 않다”며 “직장에 들어가려고 해도 마음 잡기가 어려워서 단기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공모주 사기에 6000만 원가량을 날린 주부 나 모(46) 씨도 “피해금 절반은 카드론 대출로 마련했다”며 “이자가 연 12% 수준이라 체감상 8000만~9000만 원은 날린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탄했다. 건강 문제로 일을 할 수 없어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놓인 경우도 있었다. 제조 업체에서 관리자로 일하던 60대 남성 정 모 씨는 올해 초 갑자기 뇌경색이 발병하면서 퇴직하게 됐다. 더 이상 육체노동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병원 입원 중 부업 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급등주 광고를 보게 됐고 그 길로 퇴직금 1억 3000만 원을 몽땅 날렸다. 정 씨는 “노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퇴직금에 보험금까지 털어 투자했지만 한 푼도 남지 않았다”며 “당장 병원비조차 없어 조만간 강제로 퇴원해야 할 처지인데 가족한테는 아직까지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활고도 힘들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심리적 고통으로 인한 ‘홧병’이다. 실제 일곱 명 모두 사기 피해 이후 중증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는 수면 장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약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리딩방 사기로 3억 5000만 원을 날린 40대 여성 김 모 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 씨는 지난해 초 명예퇴직 후 주식 공부를 하기 위해 네이버 밴드를 뒤져보다 한 스터디그룹에 가입했다.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하고 20년 넘게 은행에 다녔던 만큼 사기를 당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밴드는 소리 소문 없이 폭파됐고 3억 5000만 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김 씨는 “사기 피해 이후 공황장애가 너무 심해져서 교통사고만 1년간 서너 번 냈다. 가만히 있어도 누가 날 찌르는 것 같은 기분”이라며 “돈도 돈이지만 세상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게 가장 힘들다”고 호소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알게 된 여성으로부터 7400만 원을 뜯겼다는 40대 주부 이 모 씨도 “사기를 당한 후 그 여자 계정은 온데간데없이 폭파됐다”며 “그때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직 같이 나눴던 대화 내역은 남아 있어서 종종 들여다보는데 여전히 믿기 힘들다”고 했다. 피해자들의 삶은 처참할 만큼 붕괴되고 있지만 사기꾼 검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검거된 보이스피싱 사기 피의자 6218명 중 조직의 대표 혹은 임원 격인 상선은 70명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2만 1833명 중 420명이 상선이었다. 반면 피해 금액 환수가 어려운 하부 조직원이 3617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흥신소·로펌까지 사칭…피해자 두 번 울리는 하이에나들 사기를 당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당혹감과 분노감을 느끼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한다. 하지만 대부분 심신미약 상태에 빠져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를 노리고 투자금 회수나 가해자 처벌 등을 미끼로 고소·고발을 종용하며 재차 금원을 편취하는 2차 가해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례는 가해 조직을 상대로 법적·물리적 조처를 취해 투자금을 회수해주겠다고 접근하는 것이다. 탐정사무소나 피해복구센터·흥신소 심지어는 법무법인을 가장한 2차 사기 조직들은 ‘사기꾼의 통장을 가압류해 피해금을 환수해주겠다’며 피해자를 유혹한다. 이들은 주로 피해자들이 모인 커뮤니티나 단체 채팅방 등에 숨어들어 같은 피해자 행세를 한다. 이어 “지인이 피해복구센터의 도움을 받아 투자금을 전액 회수했다”고 하며 홈페이지 링크를 발송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끌어들인다. 이후 사기 조직의 통장을 가압류하는 방식으로 압박해 투자금을 받아내겠다고 하거나 코인거래소에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을 감행해 사기꾼들의 통장에서 투자금을 빼내겠다며 수수료 선입금을 요구한 뒤 이를 가로채 잠적한다. 투자 손실을 복구해주겠다며 재차 가짜 공모주나 급등주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도 성행한다. ‘협회’나 ‘연합’ ‘구조단’ 등의 단어를 사용해 단체명을 짓거나 ‘피해 금액만큼의 수익을 얻으면 그만둬야 한다’고 말하며 피해자들에게 신뢰감을 준 뒤 1차 사기와 마찬가지의 수법으로 투자금을 빼내는 방식이다. 일부 피해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은 자산뿐 아니라 대출까지 받아 투자해 모두 잃은 뒤 개인회생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에 대한 피해보상금을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급한다며 피해자들에게 신분증 사진이나 계좌 번호 등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피해자의 절박함을 이용해 개인정보를 넘겨받은 사기 조직들은 피해자 명의로 거액의 대출을 발생시켜 이를 빼돌린다. 보상금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피해자들은 은행으로부터 온 대출 문자를 받고 나서야 자신이 다시 사기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만 이미 사기 조직은 잠적한 후다. 변호사를 사칭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100% 승률의 사기 투자금 회수 전문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며 변호사 선임비를 미리 뜯어내거나 실제 존재하는 변호사를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뒤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것이다. 가상자산 사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홍푸른 디센트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텔레그램에서 자신을 사칭한 사기꾼에게 변호사 선임비를 갈취당한 피해자의 항의 전화를 받고 사칭 피해 사실을 인지한 뒤 조처를 취한 바 있다. 홍 변호사는 “경찰이나 변호사 사칭은 처벌이 강하기 때문에 사칭한 사람들은 직접 피해자를 만나는 것을 꺼린다. 직접 만나서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경찰이라면 소속 경찰서에, 변호사라면 법률사무소에 전화를 하거나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여부를 확인하는 등 상대방의 신분을 확실히 해야 2차 사기를 방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사기를 당한 뒤 홧김에 사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면 2차 사기꾼들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소요되더라도 경찰 신고 등 공적인 절차로 피해 회복을 시도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투자금 환불 미끼에 사기 가담"…가해자 100명 잡으면 25명이 피해자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0대 박경태(가명) 씨가 대표적이다. 사기를 당한 박 씨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사기꾼들의 제안을 덥석 물었는데 돈을 돌려받기는커녕 본인 역시 사기에 가담하게 됐다. 사연은 이렇다. 박 씨는 지난해 5월 한 마케팅 업체로부터 자신들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영화 리뷰를 작성하면 수익을 나눠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속는 셈 치고 리뷰를 올렸는데 5만 원을 실제로 받았다. 그는 업체를 신뢰하게 됐고 이후 투자 제안에 거액을 보냈다. 하지만 이는 사기였다. 사기 조직은 박 씨의 투자를 미끼로 협박하며 ‘통장에 50만 원을 입금할 테니 특정 계좌 10곳에 5만 원씩 송금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돈을 보내고 나서야 이 계좌들이 또 다른 피해자의 것이었고 자신의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이용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보이스피싱 역할별 검거 인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보이스피싱 피의자 2만 1833명 중 4분의 1에 가까운 5064명은 사기이용계좌의 명의인이었다. 올해도 3월까지 붙잡힌 6218명 중 1523명이 계좌명의인이다. 계좌명의인 중 대부분은 사기 조직에 소속된 범죄자들이 아닌 사기를 당한 피해자였다. 사기 조직은 피해자를 포섭하는 단계에서 실제 소액을 송금하며 신뢰를 쌓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 사기당한 피해자들을 겁박해 이들의 통장을 대포통장처럼 사용한다. 피해자들은 미심쩍지만 따르지 않으면 피해 금액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걱정에 돈을 송금하는데 송금하는 순간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가해자로 신분이 바뀌게 된다. 최근 수사기관의 단속이 까다로워지며 대포통장 개설 단가가 높아지자 피해자의 통장을 범행에 이용하는 사기 조직이 늘어나고 있다. 이전까지 모든 송금에 대포통장을 이용했던 사기 조직은 이제는 수천만 원 이상의 큰 금액만 대포통장으로 받고 소액 입출금은 피해자의 계좌를 사용한다. 대포통장 개설 비용을 아끼며 수사기관의 추적을 교묘히 피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일반 시민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알바몬이나 알바천국 등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정상적인 업무인 것처럼 가장해 인력을 구한 뒤 그들에게 보이스피싱 업무를 맡기는 것이다. 인천의 한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20대 김하나(가명) 씨는 콜센터 직원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해 소액 결제를 유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가입비를 명목으로 피해자들에게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의 소액을 받은 뒤 다른 직원에게 고객을 넘긴 탓에 김 씨는 자신의 행동이 범죄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김 씨는 “회사가 정식 업체로 등록돼 있었던 데다 직원들도 많고 급여 체계나 복지제도도 마련돼 있어서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했다”며 “이후 사기 조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회사 측에서 ‘퇴사를 하면 성과급을 모두 돌려줘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은 탓에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피해자 혹은 일반 시민이 가해자가 되면 금전적 피해는 물론 심리적 타격도 강하게 받는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박 씨는 “가해자를 누구보다 증오하고 원망하는 내 자신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가해자가 됐다는 사실에 한동안 괴로워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 역시 “뜻하지 않게 경찰 수사를 수개월간 받으면서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쳤다”며 “그동안 콜센터 직무만 담당해왔는데 지금은 그 어떤 회사도 믿기 어려워 구직도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거액의 투자금을 잃을 위기에 놓인 피해자들이 사기 조직의 손에 좌지우지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기 행각에 가담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며 “피해를 입었더라도 가해 조직이 요구하는 송금 등의 행위는 절대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개인 통장이 대포통장화되면 신용등급 하락 등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으며 범행에 일부 가담했다고 인정될 수 있기 때문에 경찰 조사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흥신소·로펌까지 사칭…피해자 두번 울리는 하이에나들 [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사회 사회일반 2025.05.21 17:49:37사기를 당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당혹감과 분노감을 느끼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한다. 하지만 대부분 심신미약 상태에 빠져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를 노리고 투자금 회수나 가해자 처벌 등을 미끼로 고소·고발을 종용하며 재차 금원을 편취하는 2차 가해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례는 가해 조직을 상대로 법적·물리적 조처를 취해 투자금을 회수해주겠다고 접근하는 것이다. 탐정사무소나 피해복구센터·흥신소 심지어는 법무법인을 가장한 2차 사기 조직들은 ‘사기꾼의 통장을 가압류해 피해금을 환수해주겠다’며 피해자를 유혹한다. 이들은 주로 피해자들이 모인 커뮤니티나 단체 채팅방 등에 숨어들어 같은 피해자 행세를 한다. 이어 “지인이 피해복구센터의 도움을 받아 투자금을 전액 회수했다”고 하며 홈페이지 링크를 발송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끌어들인다. 이후 사기 조직의 통장을 가압류하는 방식으로 압박해 투자금을 받아내겠다고 하거나 코인거래소에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을 감행해 사기꾼들의 통장에서 투자금을 빼내겠다며 수수료 선입금을 요구한 뒤 이를 가로채 잠적한다. 투자 손실을 복구해주겠다며 재차 가짜 공모주나 급등주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도 성행한다. ‘협회’나 ‘연합’ ‘구조단’ 등의 단어를 사용해 단체명을 짓거나 ‘피해 금액만큼의 수익을 얻으면 그만둬야 한다’고 말하며 피해자들에게 신뢰감을 준 뒤 1차 사기와 마찬가지의 수법으로 투자금을 빼내는 방식이다. 일부 피해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은 자산뿐 아니라 대출까지 받아 투자해 모두 잃은 뒤 개인회생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에 대한 피해보상금을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급한다며 피해자들에게 신분증 사진이나 계좌 번호 등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피해자의 절박함을 이용해 개인정보를 넘겨받은 사기 조직들은 피해자 명의로 거액의 대출을 발생시켜 이를 빼돌린다. 보상금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피해자들은 은행으로부터 온 대출 문자를 받고 나서야 자신이 또다시 사기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만 이미 사기 조직은 잠적한 후다. 변호사를 사칭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100% 승률의 사기 투자금 회수 전문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며 변호사 선임비를 미리 뜯어내거나 실제 존재하는 변호사를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뒤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것이다. 가상자산 사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홍푸른 디센트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텔레그램에서 자신을 사칭한 사기꾼에게 변호사 선임비를 갈취당한 피해자의 항의 전화를 받고 사칭 피해 사실을 인지한 뒤 조처를 취한 바 있다. 홍 변호사는 “경찰이나 변호사 사칭은 처벌이 강하기 때문에 사칭한 사람들은 직접 피해자를 만나는 것을 꺼린다. 직접 만나서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경찰이라면 소속 경찰서에, 변호사라면 법률사무소에 전화를 하거나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여부를 확인하는 등 상대방의 신분을 확실히 해야 2차 사기를 방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사기를 당한 뒤 홧김에 사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면 2차 사기꾼들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소요되더라도 경찰 신고 등 공적인 절차로 피해 회복을 시도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
"투자금 환불 미끼에 사기 가담"…가해자 100명 잡으면 25명이 피해자[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사회 사회일반 2025.05.21 17:48:31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0대 박경태(가명) 씨가 대표적이다. 사기를 당한 박 씨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사기꾼들의 제안을 덥석 물었는데 돈을 돌려받기는커녕 본인 역시 사기에 가담하게 됐다. 사연은 이렇다. 박 씨는 지난해 5월 한 마케팅 업체로부터 자신들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영화 리뷰를 작성하면 수익을 나눠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속는 셈 치고 리뷰를 올렸는데 5만 원을 실제로 받았다. 그는 업체를 신뢰하게 됐고 이후 투자 제안에 거액을 보냈다. 하지만 이는 사기였다. 사기 조직은 박 씨의 투자를 미끼로 협박하며 ‘통장에 50만 원을 입금할 테니 특정 계좌 10곳에 5만 원씩 송금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돈을 보내고 나서야 이 계좌들이 또 다른 피해자의 것이었고 자신의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이용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보이스피싱 역할별 검거 인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보이스피싱 피의자 2만 1833명 중 4분의 1에 가까운 5064명은 사기이용계좌의 명의인이었다. 올해도 3월까지 붙잡힌 6218명 중 1523명이 계좌명의인이다. 계좌명의인 중 대부분은 사기 조직에 소속된 범죄자들이 아닌 사기를 당한 피해자였다. 사기 조직은 피해자를 포섭하는 단계에서 실제 소액을 송금하며 신뢰를 쌓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 사기당한 피해자들을 겁박해 이들의 통장을 대포통장처럼 사용한다. 피해자들은 미심쩍지만 따르지 않으면 피해 금액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걱정에 돈을 송금하는데 송금하는 순간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가해자로 신분이 바뀌게 된다. 최근 수사기관의 단속이 까다로워지며 대포통장 개설 단가가 높아지자 피해자의 통장을 범행에 이용하는 사기 조직이 늘어나고 있다. 이전까지 모든 송금에 대포통장을 이용했던 사기 조직은 이제는 수천만 원 이상의 큰 금액만 대포통장으로 받고 소액 입출금은 피해자의 계좌를 사용한다. 대포통장 개설 비용을 아끼며 수사기관의 추적을 교묘히 피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일반 시민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알바몬이나 알바천국 등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정상적인 업무인 것처럼 가장해 인력을 구한 뒤 그들에게 보이스피싱 업무를 맡기는 것이다. 인천의 한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20대 김하나(가명) 씨는 콜센터 직원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해 소액 결제를 유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가입비를 명목으로 피해자들에게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의 소액을 받은 뒤 다른 직원에게 고객을 넘긴 탓에 김 씨는 자신의 행동이 범죄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김 씨는 “회사가 정식 업체로 등록돼 있었던 데다 직원들도 많고 급여 체계나 복지제도도 마련돼 있어서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했다”며 “이후 사기 조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회사 측에서 ‘퇴사를 하면 성과급을 모두 돌려줘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은 탓에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피해자 혹은 일반 시민이 가해자가 되면 금전적 피해는 물론 심리적 타격도 강하게 받는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박 씨는 “가해자를 누구보다 증오하고 원망하는 내 자신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가해자가 됐다는 사실에 한동안 괴로워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 역시 “뜻하지 않게 경찰 수사를 수개월간 받으면서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쳤다”며 “그동안 콜센터 직무만 담당해왔는데 지금은 그 어떤 회사도 믿기 어려워 구직도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거액의 투자금을 잃을 위기에 놓인 피해자들이 사기 조직의 손에 좌지우지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기 행각에 가담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며 “피해를 입었더라도 가해 조직이 요구하는 송금 등의 행위는 절대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개인 통장이 대포통장화되면 신용등급 하락 등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으며 범행에 일부 가담했다고 인정될 수 있기 때문에 경찰 조사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더 교묘해진 보이스피싱…올 피해액 첫 1조 넘긴다[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사회 사회일반 2025.05.21 17:39:30평소처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김 모(45) 씨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매캐한 연기 속에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가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보이스피싱으로 2억 5000만 원을 잃은 아내가 신변을 비관해 자녀들과 동반 자살을 시도한 것이었다. 결국 열두 살 아들은 끝내 숨을 거뒀고, 뒤늦게 의식을 되찾은 아내는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다. 아홉 살 딸은 뇌 손상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김 씨는 현재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딸이 깨어났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밤낮으로 재활비와 치료비를 모으고 있다. 날로 증가하는 사기 범죄가 피해자의 삶과 가족, 나아가 민생을 위협하고 있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경찰청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보이스피싱 사기로 인한 피해액은 3116억 원에 육박했다. 2023년 피해액이 4472억 원, 2024년에 8545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가파른 증가세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추세라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피해액이 1조 원을 넘게 된다”고 밝혔다. 발생 건수 역시 3월까지 5878건을 기록해 연간으로는 지난해의 2만 839건을 넘을 것으로 관측된다. 사기 수법이 치밀해지면서 1인당 피해 금액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발생 건수당 피해 금액은 2022~2023년 2400만 원 안팎에서 2024년 4100만 원으로 수직 상승했고 올해는 5300만 원까지 치솟았다. 본지가 직접 사기 피해자 1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설문 조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드러났다. 1억~5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는 답변이 36명으로 가장 많았고 5억 원 이상을 뜯긴 피해자도 2명이나 있었다. 단일 최고 피해액은 6억 3000만 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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