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패싱(배제)’한 채 추진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은 한국에 경고등이다. 트럼프가 향후 북미 대화에서 우리나라를 패싱할 가능성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인적 네트워크와 중국·일본 등을 ‘지렛대’로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코리아 패싱'에 대한 우려 자체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국력이 약했을 때의 자격지심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미국은 이제 막 대북 정책을 수립하기 시작한 단계다. 과거 대통령 취임 후 대북 정책이 구체화되기까지 3, 4개월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4~5월께 굵직한 대북 정책이 공개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 기간 동안 충분히 우리나라의 입장을 전달하고 반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패싱에 대한 경계를 늦춰선 한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트럼프는 동맹국, 우호국이라도 결코 친절하지 않고 자신이 한복판에 서서 주도한다는 대통령 중심주의가 강하다"며 "모든 것을 다 패싱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트럼프 2기 정부가 대북 정책을 검토하는 동안 "최대한 인풋을 줘야 한다"며 "리처드 그리넬 북한·베네수엘라 특사, 알렉스 웡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 같은 이들을 통해 우리의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1기 시절 이도훈 당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라는 네트워크를 활용했던 사례 등을 벤치마킹하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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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의 기본적인 입장은 무역 적자든 방위비 분담금이든 동맹국으로서 더 책임을 지라는 것"이라며 "무역, 방위비 분담금, 조선 유지·보수·정비(MRO) 등 '딜'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을 다 같이 놓고 협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처별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경제부총리라는 컨트롤타워 아래 전(全) 정부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또 '중국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트럼프는 미일동맹, 한미동맹이 중국 견제에 얼마나 효용이 있는지를 본다. 우리가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겠지만, 미국이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최 교수는 "중국이 비공식적으로라도 우리에게 불만을 내비칠 수는 있지만, 이는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현욱 세종연구소장 역시 중국을 지목했다. 김 소장은 "중국은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북한 지원도, 대만 문제에 대한 강한 반발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 상황에서 우리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일본을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 견제·태평양 동맹이라는 측면에서 핵심 동맹이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과 함께 한 목소리로 미국을 설득하면 한층 성공률이 높을 것이란 지적이다.
한편 탄핵 정국이 종료된 후 대통령의 역할도 관건이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대사는 19일(현지시간)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 석좌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서울 패싱' 여부는 아시아 정책을 담당하는 미 행정부에 누가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그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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