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가 결국 열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불거진 사법부 정치적 중립성 논란과 정치권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회의가 조기 대선 직전인 오는 26일에 열리는 만큼, 사법부가 이 민감한 사안을 입장 표명만으로 정리할 수 있느냐는 구조적 회의가 제기된다. 실질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회의 결과가 침묵이든 발언이든 모두 정치적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오는 5월 26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 제13강의실에서 임시회의를 연다. 전체 대표 126명 중 5분의 1 이상이 회의 소집을 요청하면서 공식 개최가 결정됐다. 회의는 현장 참석과 온라인 병행 방식으로 진행되며, 안건은 회의 7일 전까지 4인 이상의 동의로 사전 상정할 수 있고, 회의 당일에도 9인 이상의 동의가 있으면 추가 상정이 가능하다.
이번 임시회의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 필요성을 포함한 입장 정리부터, 민주당이 제기한 대법원장 탄핵과 특검 도입 추진에 대한 대응 방안까지 다양한 쟁점이 논의될 전망이다. 일부 법관은 대법원이 선거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빠른 판단을 내린 데 대해 책임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다른 일부 법관 대표들은 정치권이 판결 직후 대법원을 직접 겨냥하며 사법부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회의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법관대표회의는 의견 표명 기구로, 실제 사법행정이나 인사에 대한 법적 권한은 없다. 모든 안건은 출석자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채택되며, 유감 표명이나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입장은 내부 합의 부족으로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회의 시점이 조기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어떤 결론이든 정치적 해석을 피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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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회의에서 강한 메시지를 채택할 경우 '대선 개입'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고, 반대로 뚜렷한 입장 없이 회의를 마무리할 경우 “사법부가 독립성 침해에 침묵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도 이 같은 현실적 고민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 내부에서 정치적 중립성 훼손 문제를 공론화하고, 자율적으로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은 일정한 의미를 갖는다. 법관대표회의는 2018년 공식 제도화된 이후 주요 사법 현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제시해 왔고, 올해 1월에는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에 대해 “법원을 향한 집단적·폭력적 공격은 헌법 질서를 훼손하는 행위”라는 성명을 낸 바 있다.
전직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회의 시점이 대선 직전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파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결국 강한 입장도, 침묵도 부담이 되는 구조 속에서 대표회의가 사법부의 목소리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지가 이번 논의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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