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착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독재자라며 허무맹랑한 비판을 하자 유럽이 이에 일제히 맞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엄호하고 나섰다. 이는 미·러 밀착에 따른 '유럽 패싱'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배경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은 20일(현지시간)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유롭고 공정하며 민주적인 선거에서 합법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라고 밝혔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6년째 임기를 이어오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선거 안 하는 독재자”라고 비난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스테판 더케이르스마커르 수석 부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우크라이나는 민주 국가다. 푸틴의 러시아는 그렇지 않다"라며 이같이 답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과 관련해서도 "우크라이나나 유럽의 참여 없는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며 "우리의 입장은 확고부동하다"고 재확인했다.
유럽 각국은 일제히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팩트 체크'에 나섰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전날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에서 "'우크라이나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로서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고 전쟁 중에 선거를 미루는 것은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그랬듯이 지극히 합당하다"고 말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민주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은 한 마디로 잘못되고 위험한 일"이라며 "전쟁 중에 적절한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헌법과 선거법에 반영된 팩트"라고 덧붙였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어처구니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ZDF방송과 인터뷰에서 "성급히 트윗이나 날리는 대신에 진짜 세상을 들여다본다면 유럽에서 누가 독재정권 아래 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그건 러시아인과 벨라루스인들"이라고 쏘아붙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전날 오후 엘리제궁에서 유럽 각국과 캐나다 등 19개 나라 정상과 화상 회의를 연 뒤 "프랑스와 동맹국의 일치된 입장은 명확하다"며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편에 서 있으며 유럽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했다며 "항구적 평화 기여 방법과 우리가 어떻게 끝까지 우크라이나가 강력할 수 있도록 할지"에 관한 논의 결과를 설명했다고 엑스(X·옛 트위터)에 밝혔다.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에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도널드 트럼프의 말이 200% 옳다"고 맞장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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