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농축산물 10개 품목 중 1개 품목 꼴로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 압박이 점차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 농축산물에 남아 있는 관세가 한국을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서울경제신문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농축산물 관세 잔존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전체 1591개 품목의 88.3%에 해당하는 1405개 품목이 0% 세율을 적용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기준 관세가 남아 있는 품목은 186개(11.7%)로 이 가운데 151개는 2031년까지 순차적으로 관세가 철폐된다.
2031년 이후에도 관세가 유지되는 품목은 쌀, 분유·연유, 천연꿀, 감자, 오렌지, 대두 등 35개 품목이다. 2031년 이후에는 이들 품목을 제외한 미국에서 들여오는 농축산물 97.8%가 무관세로 한국에 수입된다.
이 35개 품목은 한국 입장에서는 ‘초민감 품목’으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과도 같다. 수입 관문을 완전히 개방할 경우 국내 농산물 가격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고 병해충, 식량주권 침해 등의 우려가 있는 품목들이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국가별 맞춤형 상호 관세로 책정하겠다고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초민감 품목의 관세까지도 일부 조정하거나 소고기 월령 제한 조치 등 비관세장벽까지 일부 문턱을 낮춰야 할 수 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해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30개월 미만의 소고기만 수입하고 있는 월령 제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의 엄격한 농산물 수입 검역 절차를 완화해달라는 요구가 나올 수도 있다. USTR은 블루베리·체리·사과 등 농산물에 대한 검역 완화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NTE 보고서에 담았다. 현재 미국이 한국에 가장 우선적으로 검역 절차 진행을 요구하고 있는 품목은 블루베리다.
이 밖에 미국이 협정을 통해 정해진 저율할당관세(TRQ) 물량을 늘려달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쌀은 수입이 가능한 전체 할당량인 40만 8700톤 가운데 미국에 13만 2304톤이 할당돼 있다. 한국은 미국 외에 중국·베트남·태국·호주까지 총 5개국에 40만 8700톤의 한도 내에서 국가별 물량을 할당하고 5%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미국이 이 물량을 뒤흔들 가능성도 있다. 정해진 물량을 벗어난 수입량에 대해서는 513%의 관세가 부과된다.
소고기 같은 일부 품목은 오히려 우리가 협상 카드로 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는 지난해 22억 2000만 달러 규모의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해 전체 국가 중 수입 1위를 차지했다.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일본(18억 7000만 달러)이나 중국(15억 8000만 달러)보다 더 많은 물량을 수입하는 만큼 미국 축산 업계를 통해 우회적 설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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