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는 국내에 단 하나 남은 ‘특별한 바위’가 세워져 있다. 내란수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씨의 휘호석이다. 13일 도서관에 방문해 보니, 후문 주차정산소 옆에 설치된 전씨 휘호석은 빼곡한 수풀에 가려져 아무런 글자도 보이지 않았다. 윗머리만 우뚝 솟아 있어 여느 평범한 바위 중 하나로 보였다. 오랜 기간 철거 논란에 휩싸였던 이 휘호석은 2020년 7월 후문 옆으로 옮겨졌고, ‘국민독서교육의 전당' ‘대통령 전두환’이라고 새겨진 부분이 가려진 채 존치돼 왔다. 더는 보이지 않는 그의 이름처럼 전씨가 남긴 잔재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 내 전두환씨의 휘호석이 철거된 가운데, 국립중앙도서관 내 전씨의 휘호석도 철거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립중앙도서관은 올해 국가기록원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해당 휘호석에 대한 존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14일 밝혔다. 국가기록원이 생산기관 의견조회, 기록연구사 심사를 통해 보존가치가 높다고 평가하면 전씨 휘호석은 도서관에 계속 남는다. 하지만 보존가치가 낮게 평가되면 도서관에서 존치 여부를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서울경제신문에 “전씨 휘호석은 행정박물(행정기관에서 생산·활용한 형상기록물)에 해당한다”며 “이 같은 행정박물은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라 국가기록원 기록물평가심의회를 거쳐야 존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체부 본부를 거쳐 올 8월까지 국가기록원에 심의 요청을 할 계획”이라며 “8월 이후 심의회가 개최된다면 올해 안으로 심사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도서관 측은 전했다. 도서관 내 휘호석의 운명이 올해 안에 결정된다는 얘기다.
전씨 휘호석은 1988년 2월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과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학술원에 설치됐다. 그러나 2020년 10월 학술원에 이어 이달 10일 예술의전당까지 휘호석을 철거하면서 이제 전씨의 휘호석이 남아 있는 곳은 국립중앙도서관이 유일하다.
이 휘호석을 둘러싼 논란은 전씨가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뇌물수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후 꾸준히 이어져 왔다. 전씨가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하면서 그의 휘호가 행정박물로서의 가치를 잃었다는 것이다. 앞서 학술원은 2020년 10월 휘호석을 철거했으나, 예술의전당은 나무로 '대통령 전두환' 문구를 가린 상태로 휘호석을 존치시켰다.
이에 지난해 10월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에서 내란수괴, 반란수괴 등으로 유죄판결 받은 전두환씨의 휘호석이 대한민국 대표 복합문화예술공간인 예술의전당에 설치돼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빠른 시일 내에 철거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이후 예술의전당은 내부 간부회의를 개최하고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을 통해 휘호석 철거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지난달 20일 문체부로부터 승인을 받아 이달 10일 최종적으로 휘호석을 철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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