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과 탄핵정국 이후 고꾸라진 원화의 고유가치가 최악의 국면은 벗어났다는 지표가 제시됐다. 주요 교역국과의 통화가치를 비교한 명목실효환율이 반등 조짐을 보이면서다. 지난 1월 한국은행이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고도 금리를 동결한 데는 원화의 과도한 평가절하가 영향을 끼쳤는데 오는 25일 예정된 통화정책방향회의(통방) 전까지 원화가 회복세를 찾는다면,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정도 한층 수월해질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한은 금통위에 따르면 최근 명목실효환율이 지난해 12월 29일 연 최저점이었던 89.22에서 이달 4일 90.17로 반등했다. 명목실효환율은 원화 가치를 주요 교역상대국과의 무역 비중을 고려해 가중평균한 값으로, 금통위원들이 통방에 사용하는 주요 환율 지표 가운데 하나다. 기준선은 100(2010년=100)으로 100을 넘기면 교역국들 대비 고평가(원화강세), 100을 못 넘기면 저평가(원화약세) 됐다는 얘기다. 두 나라 간 교환 가치를 나타내는 원·달러, 원·엔 환율 등 명목환율과는 대비되는 개념으로 금통위원들이 이를 살피겠다는 건 그간 “특정 환율은 염두하지 않는다”는 이창용 총재의 말과 궤를 같이 한다.
원화 가치에 경고등이 켜진 건 작년 말부터다. 12·3 비상계엄 당시만 해도 93선을 웃돌던 명목실효환율은 지난해 12월 27일 이후 6거래일 연속 80선대에 머물렀다. 그러다 지난달 27일에는 91.26, 4일 90.17을 나타내는 등 일부 등락에도 80선은 벗어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2월 통방 때까지 지속될 경우 금통위의 시선은 환율에서 벗어나 내수 등 경기부양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허인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명목실효환율이 올랐다는 건 원화 고유 약세 요인이 해소된 측면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용호 KB증권 부부장은 “지난해 말에는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일방향의 움직임만 있었지만 최근에는 원·달러 환율이 하락(원화가치 상승)하는 움직임도 있어 한은이 금리를 내리기에 불편한 상황만은 아니”라고 짚었다.
원화는 지난해 11월 이후 ‘트럼프 트레이드’ 이슈를 소화하며 조정을 거친 만큼 추가 약세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1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 발표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날 한국 증시와 외환 시장은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코스피는 외국인과 기관의 순매수 영향으로 0.71% 오른 2539.05로 마감했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4원 오른 1452.6원에 오후 장을 마쳤다. 물론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노무라증권은 미·중 무역갈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종료 가능성 등을 원·달러 환율의 상방 압력 요인으로 꼽았다.
최남진 원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2월 금통위에는 한은이 환율뿐만 아니라 내수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대외에 알리며 경기부양 신호를 보낼 공산이 크다"면서 “다만 원·달러 환율이 튈 수 있으니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은 제한적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시장의 기대를 잠재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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