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증시가 주요국 대비 선방하고 있지만 장기 상승 추세를 점치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했던 덕에 저평가 매력이 부각되고 있기는 하나 길어지는 정치 불안과 좀체 반등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국내 경제, 일본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엔캐리 트레이드(저렴한 엔화를 빌려 매수한 해외 자산 재매도) 청산 불안 등 증시 악재 요인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국 ‘딥시크발’ 인공지능(AI) 산업 충격과 도널드 트럼프 신정부의 관세 부과 정책까지 본격화되는 등 악재가 연달아 터지며 투자자들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3일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리버스마켓’ 유형 펀드의 설정액은 1조 1252억 원 증가했다. 리버스마켓 펀드는 선물이나 옵션 등 파생상품을 활용해 지수나 개별 주가수익률을 역으로 추종하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리버스마켓 펀드는 올 들어 -5.42%의 부진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지수나 개별 주가수익률을 일정 배수 정방향으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유형 펀드는 올 들어 9%의 수익률을 올리며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다만 호실적과 별개로 투자 자금은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레버리지 유형 펀드의 설정액은 올 들어 5276억 원 감소했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의 순매도세가 눈에 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올 들어 코스피지수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KODEX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1790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KODEX 코스닥150 레버리지’ ETF 역시 2850억 원어치 순매도하며 더 이상의 지수 상승을 기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 국내 증시 전망은 그야말로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국내 경제가 가장 큰 문제다. 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내 연구기관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도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잇달아 하향 조정하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 이후 국내 정치 불확실성도 커지며 올해 지수 상승 국면에도 외국인 투자 자금이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있다.
일부 수출 업종 중심의 주가 상승도 한계에 부닥쳤다. 최근 중국 딥시크의 등장은 고성능의 AI 모델 출시를 위해서는 값비싼 반도체가 필요하다는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뒤엎었다. 이에 올해 국내 증시 상승세를 이끌었던 국내 반도체, 전력 변압기 업종 주가도 나란히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딥시크 여파로 미국 AI 관련 업종이 타격을 받으며 국내 증시도 장기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안소은 KB증권 연구원은 “딥시크의 등장으로 AI 데이터센터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을 직면한 미국 반도체 업종의 중기 이익 성장 전망이 약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 본격화 역시 장기적인 국내 증시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상당한 타격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 운용 업계 관계자는 “협상을 중요시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극단적인 관세 부과 정책을 장기간 유지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피해가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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