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재정투입에 대해서도 ‘국정협의회’를 열어 논의할 수 있기를 요청드립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굳이 ‘재정투입’으로 애써 돌려 말하는 데는 현재 추경 논의가 야당의 ‘어젠다’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재정 역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거세지만 최 권한대행은 여당 눈치에 ‘추경’을 입 밖에도 꺼내지 않는 모습이다.
2일 국회를 중심으로 추경 필요성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효과만 있다면 민생 지원금이 아닌 다른 정책인들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며 “만약 정부·여당이 ‘민생 지원금 때문에 추경을 못하겠다’는 태도라면 우리는 민생 지원금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이 주장하는 추경이 이 대표의 ‘선심성 공약’ 때문이라는 지적을 차단하며 정부에 재차 추경을 압박한 것이다.
야당 뿐 아니라 한은도 추경에 적극적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6일 “소비 심리가 악화한 상황에서 어차피 (추경을) 할 것이라면 빨리 하는 것이 좋다”며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고, 통화정책 외 경기 부양에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내수 진작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재정정책 수단을 모색해야 한다”며 “경기둔화의 골이 깊어지지 않도록 여야, 정부의 정치적 합의를 통해 적시에 실효성있는 추경 등 경기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정처는 특히 정부·여당이 경기부양 카드로 제시한 상반기 예산 조기 집행을 두고 “하반기에는 성장의 하방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했다.
지난해 12·3 계엄 사태와 이어진 대통령·국무총리 탄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에 따른 세계 경제 불확실성 등으로 재정당국 내에서도 추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반영하듯 최 권한대행은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어려운 민생 지원과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재정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정치권뿐만 아니라, 지자체, 경제계 등 일선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다”며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가장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는 재정의 기본원칙 하에 국회와 정부가 함께 논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추경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정부가 추경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이튿날 기획재정부는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정부는 현재 추경 사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적극 반박했다. 모두가 추경을 이야기하고 최 권한대행 스스로도 ‘추가 재정투입’을 언급했지만, 여전히 정부는 ‘추경’이라는 말을 금기시한 셈이다.
이 같은 정부의 태도는 여당의 기조와 연관이 깊어 보인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추경을 주장하는 이 대표를 향해 “민생에 진심이라면 여야정 협의체부터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민주당은 4.1조원 규모의 민생 예산을 삭감해버렸다”며 책임을 돌린 뒤 “어떤 분야에, 어느 정도 규모의 추경이, 왜 필요한지 논의하기에 여야정협의체의 테이블은 충분히 넓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야당을 향해 “추경을 말하려면 지난해 말 예산안 일방적 삭감 강행 처리에 대한 사과가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여당 역시 추경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눈치지만 야당이 주도하는 흐름에 들러리만 설 수는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결국 최 권한대행의 주장도 여당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최 권한대행은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 책임지는 동시에 재정당국 수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여당보다 반발짝 앞서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며 ‘여야 협의’만 외치기 보다는 민생을 위해 추경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관련 기재부 관계자는 “추가 재정투입은 추경을 포함해 기금운용계획 변경 등 종합적인 수단이 있다”며 “국정협의회가 가동하면 추경을 포함한 여러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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