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010130)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한화(000880)그룹·현대차(005380)·LG화학(051910)이 집중투표제 찬반 결정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각 기업의 정관에 해당 제도를 배제하게 한 조항과 고려아연과의 주주 관계 등이 표결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현대차·LG화학은 이달 23일 열리는 임시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안건이 상정될 경우를 가정하고 찬성·반대·기권 세 가지 선택지를 두고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의 이사 선임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주주가 보유한 의결권에 선임할 이사의 수를 곱한 표만큼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들 기업이 지분율 싸움에서 MBK파트너스(40.97%)에 뒤처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17.50%)을 위해 집중투표제에 찬성하는 표를 던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화그룹·현대차·LG화학은 지분을 7.80%, 5.05%, 1.89%씩 들고 있는 고려아연의 우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이 한화그룹·현대차·LG화학의 도움에 힘입어 집중투표제를 도입할 경우 MBK가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하기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주총에서 표 대결을 하는 MBK와 고려아연 측 추천 이사는 각각 14명, 7명이다.
이들 가운데 현대차와 한화그룹은 이른바 ‘3% 룰’에 따라 보유 주식의 최대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화그룹은 한화파워시스템글로벌(4.8%), 한화임팩트(1.8%), ㈜한화(1.2%) 등 3곳으로 나눠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 중이다.
다만 한화그룹·현대차·LG화학이 섣불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정작 이들 기업은 자사 정관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기업은 만약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안건에 찬성할 경우 소액주주와 행동주의 펀드 등이 자사에도 해당 제도를 도입하라는 압박에 나설 수 있다는 부분을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는 이미 2018년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라는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요구를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한 전력이 있다. LG그룹도 모든 상장 계열사 정관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은 상태다.
시장에서는 이들 가운데 고려아연 지분율이 가장 높은 한화그룹의 움직임이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려아연이 지난해 ㈜한화 지분 7.25%를 2022년 양 사 주식 맞교환 때의 단가(주당 2만 8850원)보다 3.12% 싼 1519억 원(주당 2만 7950원)에 한화에너지에 넘긴 만큼 한화그룹이 이번 기회에 이에 대한 보답 표결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다. 고려아연 입장에서도 3%룰을 감안 시 총 6.0% 지분율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한화그룹의 지원 사격이 절실한 상황이다.
앞서 한화그룹은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해 한화에너지로 ㈜한화 보통주 600만 주(8.0%)를 주당 3만 원에 공개매수하려다가 390만 주(5.2%)만 모으는 데 그친 바 있다. 고려아연이 넘긴 주식의 가격은 이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또 다른 변수는 집중투표제 도입 자체도 확정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MBK는 법원에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안건 상정을 막아달라며 ‘의안 상정 금지’ 가처분을 낸 상황이다. 첫 심문 기일은 17일로 임시 주총일인 23일 전까지는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가처분을 담당하는 재판부는 자사주 취득 금지 등 고려아연과 MBK 간 경영권 분쟁 사건을 계속 다뤄온 곳이다. 이 재판부는 현재까지는 고려아연 측 손을 연거푸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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